2022년 11월 23일. 약한 빗줄기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오늘은 후쿠오카현의 기타큐슈시에 속한 고쿠라와 모지코로 떠난다.
하카타에서 고쿠라까지 기차로 가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도카이도·산요 신칸센을 이용한다. 둘째, 특급 소닉 열차를 이용한다. 셋째, 일반 JR을 이용한다. 신칸센은 15분, 특급 소닉은 40분, JR은 80분이 소요된다. 신칸센은 편도 3,470엔으로 매우 비싸기 때문에 신칸센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은 주말(금, 토, 일) 할인 티켓인 욧카욧카킷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는 날은 평일이었고, 하카타-고쿠라 구간은 서일본 철도라 JR 레일패스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특급 소닉을 이용하게 되었다.
특급 소닉은 1시간에 2~3대 운영한다. 시간이 맞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소닉을 탈 수 있었다. 전날 니시테츠 전철을 잘못 탄 경력이 있어 플랫폼에 계신 직원 분께 일본어로 고쿠라 가는 기차가 맞는지 여쭤보았다. 알고 보니 반대편 기차가 소닉이었고, 하마터면 다른 기차를 탈 뻔했는데 덕분에 기차를 잘 탈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신칸센만큼은 아니지만 특급 소닉도 충분히 빠르다. 하카타 역에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강가를 지나쳤는데 그곳의 풍경이 정말 멋졌던 기억이 난다. 풍경을 감상하니 40분이 훌쩍 지나갔다.
모지코 역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19세기 항구도시로 번영했던 모지코. 지금은 그리 번화한 도시는 아니지만 과거와 현대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상사와 금융 기관들이 설립한 서양식 건물이 남아있는 모지항 레트로가 유명하다. 이 지역의 명물은 야끼카레로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야끼카레 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선물용 기성품도 많이 판다.
모지코 역에서 15분을 걸어 코가네무시에 도착했다. 이 가게는 오전 11시 45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안쪽에 바 형태 좌석이 5개 정도 있고, 문 근처에 작은 테이블이 4개 있다. 홀이 협소하므로 평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원하는 자리에 편히 앉으라 말씀해주셔서 바 가운데에 착석했다. 내가 한국인인걸 바로 아시고, 한국어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한국어를 공부하신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고, 주인 아주머니께 "아까 제가 한국인인걸 어떻게 바로 아신 건가요?"라고 일본어로 여쭈어보니 한국인들은 피부가 좋아서 알아봤다고 하셨다. 무척 맛있다는 말과 함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왼쪽에 앉은 일본인 청년 2명도 정말 맛있다며 그릇을 싹 비웠다.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가게를 운영하신지 44년이 되었다고 한다.
계산할 때 "사실 오늘 나가사키에 야경을 보러 갈 예정이었는데 비가 와서 모지코에 왔습니다. 여기에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정말 좋아하셨다. 모지코 전망대 할인 쿠폰도 주셨는데 시간이 없어 사용하지 못했다. 쿠폰은 한국으로 소중히 가져왔다. 마지막에 아주머니와 함께 셀카도 찍었다. 행복한 기억이다. 언젠가 꼭 다시 오고 싶다.
흐린 날씨의 모지항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도심에서 벗어나 외곽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포근함이 참 좋았다.
모지항 레트로와 주변 기념품 샵을 구경하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규모는 작지만 예쁜 상품이 많았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있었다. 전망대 옆 작은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간몬대교가 보인다. 간몬대교는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의 모지구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를 잇는 현수교다. 1973년에 개통했고, 길이는 9.4km이다.
저 다리를 건너가면 일본 본섬인 혼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본섬이라니, 신비한 기분이 든다. 실제로 두 도시는 행정 구역이 다르지만 거리가 가까워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고,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도보로 넘어가기 위해선 간몬 터널을 이용해야 한다. 모지항에서 페리를 타고 가라토 시장으로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가라토 시장은 주말 점심에만 열린다. 가서 시모노세키의 명물인 복어를 꼭 먹어보자. 나는 다음에 야마구치현 여행을 할 때 들릴 예정이다. 가라토 시장 옆에 위치한 아카마 신궁은 조신통신사의 객관으로 사용됐던 곳이니 시간이 된다면 방문하길 추천한다.
모지코에 온 이유 중 하나. 규슈 철도 기념관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입장료도 300엔으로 저렴하고, 규모도 크지 않아 1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기념관에서 모지코 역으로 바로 가는 길도 있으니 뚜벅이 여행객에겐 안성맞춤인 관광지다.
기차를 구경하고, 기념관 안에 있는 작은 박물관에 들어가 전시물과 기념품을 구경하고 나니 1시간이 흘렀다. 규슈 전역에 있는 철도와 기차를 미니어처로 만든 코너, 옛날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사용한 킷푸, 에키벤 용기, 기차의 설계도 등 귀중한 자료가 많았다.
기념관을 나가려는데 미니 기차 체험 코너가 있어 300엔을 내고 입장했다. 이 코너 때문인지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다. 자녀가 있는 부모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곳인가 보다. 입장객 대부분이 가족 단위였다. 체험 코너에 있는 열차는 시즌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는데 내가 갔을 땐 카모메, 유후인노모리, 특급 소닉을 포함해 4종류가 있었다.(한 대는 이름을 잘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 유후인노모리 예약에 실패해 여기서라도 모리를 타고 싶었지만 내 순서에 돌아온 열차는 카모메였다. 이때는 몰랐다. 이 녀석이 얼마나 빠른지... 이틀 후에 사가 현에서 이 녀석을 만나게 된다.
모지코 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모두 고쿠라를 지난다. 그러므로 헤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열차가 15~20분에 1대씩 있으니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분들은 열차 시각에 맞추어 도착하는 게 좋겠다.
고쿠라 역은 역사와 아루아루시티, 호텔이 이어져 있다. 나는 아루아루 시티를 구경하기 위해 들렸다.
고쿠라 역 근처에는 가볼 만한 장소가 3곳 있다. 고쿠라 성과 탄가 시장, 토토 뮤지엄이다. 고쿠라 성은 도보 15분 정도로 매우 가깝다. 고쿠라 성은 날씨에 타라 분위기를 많이 타고,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한다고 하니 꼭 들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벚꽃 시즌은 제법 볼만하다고. 고쿠라 성 반대편에는 탄가 시장이 있다. 백종원 아저씨 덕분에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제법 알려진 곳이다. 마지막으로 고쿠라 역에서 버스나 모노레일로 15분을 가면 토토 뮤지엄이 있는데 이곳은 한국인 사이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무료관람이므로 시간이 되는 분들은 꼭 가셨으면 좋겠다. 난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다.
아루아루 시티는 총 8층짜리의 큰 쇼핑몰이다. 하지만 만화박물관, 스튜디오, 행사장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둘러보는 플로어는 1~5층이다. 1층에 있는 유포테이블 카페에는 귀멸의 칼날 1기, 2기, 극장판의 원화가 전시되어 있다. 다른 자료는 촬영 가능하지만 원화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원화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20분은 훌쩍 갈 것이다.
유포테이블 카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애니메이트, 만다라케 등 다른 지역에도 흔히 있는 굿즈샵이지만 아루아루시티에는 예쁜 아크릴과 마이너 작품 굿즈가 많으니 참고하시길. 후쿠오카 캐널시티에도 굿즈가 꽤 있었지만 굿즈는 아루아루시티가 훨씬 다양했다. 덕후라면 여유 있게 3시간은 잡자. 여행 초반에 온 덕분에 꼼꼼히 둘러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왔다면 체력이 부족해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을 것 같다.
고쿠라 역에서 하카타 역으로 돌아가는 소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열심히 뛰었다. 여행 초반이라 아직 기차를 많이 타지 못했는데도 특급 소닉이 예쁜 기차임은 확실히 알겠다. 도카이도 산요 신칸센 대신 특급 소닉을 타길 참 잘했다.
역에 도착하고 서둘러 이치이스시로 향했다. 하지만 가게의 셔터는 굳게 내려가 있었다. 너무 배고픈 상태라 셔터를 보고 얼마나 허망했는지... 이날 일본은 근로 감사의 날로 휴일이었는데 영업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탓에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쉬는 날엔 구글을 너무 신봉하지 말고 가게에 전화해 확인하도록 하자.
이치이스시에서 10분을 급히 걸어 봄바치킨에 왔다. 구글 리뷰에서 추천한 대로 스테이크에 치킨 난반을 추가했다. 내 입맛에는 치킨 난반이 훨씬 맛있었다. 첫 입은 눈이 땡그라지는 맛이었다. 스테이크도 맛있었지만 돼지 냄새가 살짝 나서 냄새에 민감한 분들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난반도 뒤로 가니 살짝 느끼했다. 사실 이 집의 진수는 미소 시루다. 7박 8일 동안 일본에서 먹었던 미소 시루 중 가장 맛있었다. 미소 시루만 따로 사 오고 싶을 정도였다...
봄바치킨은 좌석에 있는 QR코드로 주문하는 방식이다. 구글이 자동 번역을 해주기 때문에 메뉴 시키기는 어렵지 않다. 밥의 동행으로 들어가면 한국 김을 팔고 있는데 이름이 한국 풀로 되어있다.(ㅋㅋㅋ) 웃겨서 캡처해놓았다. 아, 그리고 이 집은 주류가 비싸다. 하지만 괜찮다. 미소시루에만 집중해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술은 숙소에 가서 드시길 바란다.
숙소에 돌아가 기린 그린 라벨 맥주를 마시며 일본 VS 독일 경기를 보았다. 전반전은 지루했는데 후반전에 일본이 2골을 넣으며 독일에 1:2로 승리했다. 이 날의 승리는 일본 전역에 엄청난 월드컵 붐을 일으켰고, TV와 신문에는 월드컵 뉴스가 1면을 장식했다.
난 한국인이라 그저 그러려니 하고 봤지만 2018년 우리나라가 독일전에서 승리했던 때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공감되었다. 한국에서 우리나라 경기의 열기를 느낄 수 없는 점이 사뭇 아쉬우면서 세계인의 축제를 해외여행에서 느끼는 것 역시 즐거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6년 FIFA 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이 사상 최초로 공동 개최한다. 26년 여름은 북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내일은 후쿠오카를 떠나 다케오 온센, 우레시노 온센으로 이동한다. 드디어 본격적인 기차 여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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