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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이야기/7박 8일 북규슈 뚜벅이 여행(2022)

다케오와 우레시노, 한적한 온천마을로 떠나다. (2편)

by 조각찾기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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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 42분. 버스 정류장에 우레시노행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이 모인다.

 

다케오 온센 역에는 두 곳의 출구가 있다. 북쪽 출구와 남쪽 출구. 1편에 방문했던 다케오 신사, 다케오 도서관은 모두 남쪽 출구 방향이다. 그리고 오늘 탈 버스 역시 남쪽 출구에서 출발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경찰서가 보인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이 정류장이 다케오 시의 메인 버스 정류장인 것 같았다. 이 정류장에서 갈 수 있는 목적지는 다케오 시청, 유토쿠 신사, 사가역 버스센터, 신 다케오 병원, 우레시노 온천 버스 센터 등이 있다. 우레시노 온천 버스 센터행 버스를 타면 중간에 미후네야마 라쿠엔을 들린다. 미후네야마 라쿠엔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2.3km나 떨어져 있어 도보로 가기 쉽지 않다. 시간이 맞는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다케오를 방문했을 땐 미후네야마 라쿠엔에서 단풍 축제(11/8~12/4)가 개최 중이었다. 밤의 단풍이 꽤 멋지지만 입장료가 비싸고, 위치가 애매해서 들리지 않았다.

 

왼쪽에는 옆으로 타는 노약자석이 있다.
이 버스는 우레시노 온센 역을 들린다.

버스로 25분을 달리면 우레시노 온센 역에 도착한다. 이때 버스에는 중국인 여성 관광객이 2명 타고 있었다. 우레시노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목적지까지 더 남았는지 지나쳤는지를 몰라 기사님께 중국어로 여쭤보고 있었다. 나중에는 영어로 물어봤지만 승객의 영어 발음이 그닥 좋지 않았고, 일본어의 영어 발음이 달라 소통이 되지 않았다. 결국 버스는 5분 동안 멈춰 서 있었다. 기사님은 끝까지 친절하게 응대해주셨고, 중국인 관광객 둘은 sorry라 말하며 뒷 좌석으로 돌아갔다.

 

오늘의 숙소, 와타야 벳소.

우레시노 시청 앞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왔다. 이때 절뚝거리는 다리로 힘들게 캐리어를 끌고 간 기억이 난다. 버스에서 내릴 때 캐리어가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캐리어를 잡고 있던 손과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넘어지고 5초 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내린 학생과 옆에 계시던 기사님이 깜짝 놀라 괜찮냐고 연거푸 물으셨다.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버스에서 천천히 내렸지만 내려서도 다리의 통증은 제법 심했다. 여기저기 움직이며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기사 아저씨께서 출발을 못하고 계셨고, 괜찮다며 손을 올리니 그제야 출발하셨다. 7박 8일 여행의 고작 3일 차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크게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고, 실속형이라도 여행자 보험을 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재산이니 여행 중엔 서두르지 말고, 항상 조심하자.

 

규모가 큰 호텔식 료칸
체크인 시간 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늘 묵을 와타야 벳소는 우레시노에서 매우 유명한 가성비 료칸이다. 1인 1박에 약 15만원. 물론 학생인 내겐 15만원도 큰돈이라 7박의 숙소 중 이곳이 가장 비싼 곳이었다. 가이세키는 별도이고, 미리 신청해야 한다. 나는 조식만 포함된 옵션이라 저녁은 밖에서 해결했다. 한국인 직원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가 간 날은 일본인 직원뿐이었다. 처음엔 영어로 설명해주셨지만 내가 일본어가 되는 것을 아신 후로는 일본어로 설명해 주셨다. 엄청 친절하게 응대해주셔서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역시 큰 료칸은 다르구나 싶었다.

 

자전거 대여 서비스(유료)

짐을 맡기고 이 근처에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하는 곳이 있는지 여쭈니 이 호텔에 있다고 한다. 원래는 우레시노 버스 터미널에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있다고 들었지만 코로나 이후 정보가 없어 여쭤보았다. 나는 기본 자전거를 선택했다. 전동 자전거를 타면 편하겠지만 기본 자전거를 타 보고 싶기도 했고, 자전거 타기엔 제법 자신이 있었다. 1시간에 330엔, 하루는 550엔이었다. 18시까지 반납하면 된다. 나는 일일권으로 대여했다.

 

기본 자전거

열쇠로 잠금해제하는 일본식 자전거. 우리나라 자전거와 달라 낯설어 하자 로비에서 응대해주신 직원분께서 도와주신다. 무사히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해주셨다. 크레용 함박스테이크로 출발!

 

크레용 도착!
1번 함바그 세트(런치 한정). 1100엔.

자전거로 10분을 달려 크레용 함박스테이크에 도착했다. 2시가 넘었는데도 홀은 만석이었다. 5분 정도 기다려 테이블 석으로 안내받았다. 1번 세트, 데미글라스 소스로 주문했다. 얼마 후 함박 스테이크가 나왔고, 젓가락으로 패티를 가르는데...

미쳤다. 이건 그냥 미쳤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젓가락을 갖다 대니 고기가 사르르 잘린다... 그리고 그 맛은... 황홀했다. 내가 이걸 먹으러 우레시노에 왔구나... 밥도 미소시루도 무료 추가가 가능했지만 늦은 점심이라 꾹 참았다. 정신없이 먹느라 2호 냥코 센세와 인증샷을 찍을 생각 따위 하지 못했다. 先生、ごめんね。

 

후식으로 커피를 주신다. 아이스로 부탁드렸다.
이제야 선생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후식으로 주시는 커피까지 잘 마시고 나니, 배가 빵빵한게 기분이 좋다. 소화 겸 근처의 토도로키 폭포와 차 박물관으로 향한다.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

이날 날씨가 너무 좋아 자전거를 타며 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걸 눈으로 담아야 할지, 사진으로 남겨야 할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눈으로 풍경을 감상하니 토도로키 폭포에 금방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다 보면
빨간 다리와 멋진 암반이 보인다. 이 곳은 폭포보다 암반이 볼 만했다.
평화로운 시골
아이가 아버지와 그네를 탄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진 않았다. 하지만 반짝이는 햇살과 푸르른 녹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조그마한 공원을 한 바퀴 돌다보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이 나무 다리는 몇 년이나 되었을까?
폭포를 향해 내려가다보면 민트색 나무 벤치가 있다.
빨간 다리가 보인다.

폭포를 향해 반 바퀴를 내려오면 빨간 다리를 만난다. 반대쪽에는 다리 앞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이 있었다.

 

아담한 폭포 한 쌍.
새가 바위 위에서 쉬고 있다.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넜다.
공식 사진 스팟.

다리를 건너면 카메라 모양이 표시된 공식 사진 스팟이 있다. 하지만 찍지 않아도 좋다.

그저 공원을 느긋히 한 바퀴 걸어보자.

 

한 바퀴를 다 돌고 자전거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이제 차오시루(우레시노 차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조금 황량한 풍경을 지나
우레시노 차 교류관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꽤 넓었다.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곳이 아닌지 현지인 손님만 볼 수 있었다.

 

들어가니 주인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일본어로 말을 거셨다. 외국인이라고 하니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어 책자를 가져다주셨다. 박물관은 우레시노 녹차의 기원, 가마솥을 이용해 녹차 만드는 과정, 녹차 카페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레시노 녹차는 1440년에 당나라인이 도기 굽는 기술과 차나무 재배 방법을 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사가 번의 요시무라 신베에가 스스로 땅을 개간하고 차를 재배, 남경가마솥 제조법을 개량하여 전파한 것이 우레시노 녹차의 효시이다. 

우레시노 녹차는 우레시노의 산간부에서 생기는 아침 안개가 차의 새싹에 적당한 수분을 공급해주는 덕에 맛있는 녹차가 되었다. 밤낮의 기온 차가 커 부드러운 맛과 향이 난다. 녹차 카페에서 가마솥 차를 마셨는데 온천수와 녹차의 합이 잘 맞았다. 일본 녹차 특유의 맛이 있는데 이 고장의 녹차는 특히 부드러움이 강했다. 

 

차 가격은 400엔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 3종류의 차가 있고, 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메뉴가 꽤 있었다. 우레시노는 오늘날 잘 쓰이지 않는 가마솥 공법이 전해지는 지역이라 카마이리차를 주문했다. 작은 화과자 2개를 서비스로 주신다. 원래는 주전자에 끓인 물을 부어 물을 식힌 후, 다른 주전자로 옮겨 차를 우려내는 것이 정석이나 끓인 물을 바로 흰 주전자에 부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따라 마셔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후자의 방법을 썼다.

 

별도의 체험 공간이 있다. 차 내리기, 수건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자에 한해서 진행한다.

카페에서 나가면 박물관 옆에 딸린 조그마한 차 밭이 있다. 차나무에 꽃이 피어있었고, 벌들은 수분 작업으로 분주했다. 흙을 만져 보니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차, 다기, 비누, 도라야키 등의 기념품을 팔고 있다. 카페에서 마셨던 차 맛이 좋아 선물로 차를 꽤 구입했다. 현금만 가능하다. 차 가격은 500엔에서 1000엔대. 계산할 때 주인 아저씨께서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다른 직원분께 말한다. 신나보이셨다. 한국인은 잘 오지 않는 곳인가 보다. 하긴, 젊은 사람은 도시를 더 좋아하니까. 특이해 보이긴 했을 거다.

증기와 가마솥 차 2가지를 모두 사 왔는데 집에서 직접 내려보니 우레시노에서 먹었던 맛이 안 난다. 물 양이나 온도도 중요하지만 온천수인 우레시노 물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우레시노 버스 터미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레시노 버스 터미널을 들렸다. 다니는 차 편이 많진 않으나 운영은 하는 것 같았다. 인구 25,000명이 되지 않는 소도시에선 이런 터미널 하나가 정말 소중하다. 마을 중심에 있어 이용하기 좋은 위치다.

 

도요타마 히메 신사(메기 신사)에 들렸다. 옛날부터 우레시노 온천의 온천수가 피부에 좋기로 유명하여 피부병 완치나 피부를 좋게 만들어달라는 소원이 많았다고 한다. 피부의 신이라는 메기 님께 나도 피부가 좋게 해 달라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다다미방 객실 내부
방에서 보이는 우레시노 마을 풍경

와타야 벳소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방을 안내받았다. 로비부터 도서관, 기념품 가게, 대욕장 등 료칸 내부 시설을 차례대로 설명해주신다. 이때 영업시간을 말씀해주시는데 룸키와 함께 받는 종이에 쓰여 있으니 일본어가 안 들려도 걱정하시지 말길. 객실까지 안내를 해주시고 나면 손님이 계실 때도 이부자리를 펴러 직원들이 들어오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신다. 얼마 되지 않아 6시에 이불을 펴 주시러 직원 두 분이 들어오셨다. 

 

소안 요코초
두부 정식. 1180엔.
두부 나베
주당 냥코센세에게 주는 선물

소안 요코초로 저녁을 먹으러 왔다. 메뉴는 두부 정식. 가쓰오부시와 파를 나베에 넣고, 두부를 간장에 적셔 먹으면 된다. 두부의 부드러운 맛도 일품이었지만 가쓰오부시를 넣은 국물의 감칠맛이 최고였다. 7박 8일 동안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이 두부 정식의 국물을 꼽고 싶다. 물이 좋은 우레시노, 지역 사케의 맛이 궁금해진 나는 직원분께 가장 잘 나가는 니혼슈를 여쭤봤다. 잇빠이(한잔) 시켜 두부정식과 맛있게 먹었다.

 

시볼트 족욕탕
전세를 냈다.

풍족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와타야 벳소로 돌아가는 길에 족욕탕을 들렸다. 이 마을에는 24시간 운영하는 무료 족욕탕이 몇 군데 있다. 사람이 없길래 자리 잡은 곳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름이 '시볼트 족욕탕'으로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의 물이 호텔 대욕장의 물보다 훨씬 미끈거렸다. 호텔 대욕탕보다 마을 족욕탕에서의 10분이 훨씬 편안하고 행복했다. 3일 동안 6만 3천보를 걸으며 쌓였던 피로가 풀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가벼웠다.

 

와타야 벳소 건물 중앙에 있는 일본식 정원
24시간 무료 족욕탕

아직 낮 기온이 20도, 밤 기온이 10도 초반이라 다다미 방은 그리 춥지 않았다. 객실의 이불도 포근하니 너무 좋았다. 이불만 사 오고 싶을 정도였다. 대욕장은 제법 컸지만 물이 많이 미끈거리진 않았다. 그리고 료칸 규모가 큰 탓에 이용객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두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대욕장보다 료칸 정원을 구경하고 족욕탕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봤던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족욕을 마치고 나선 한국 우루과이 전을 보러 객실로 돌아갔다. 

 

정원에서 바라본 우레시노의 밤하늘

후쿠오카현을 벗어난 3일 차. 다케오와 우레시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람이 적은 시골 마을이었다. 벳푸처럼 지옥온천이 있지도, 유후인처럼 긴린코 호수가 있지도, 구로카와처럼 산맥을 품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하루 쉬면서 빛공해와 소음, 사람에서 해방되는 것도 참 좋지 않은가. 우리는 너무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렇게 스스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나이를 먹고 세월을 흘러 보낸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집중해본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다. 혼자인 시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3일 차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를 더 알고 싶다. 앞으로 남은 여정 동안 그 답을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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