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2일 새벽, 처음으로 홀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길. 4시 55분에 출발하는 공항 리무진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인도의 보도블록에 부딪히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요란했다. 마치 이 새벽의 고요함을 깰 것만 같은 소리. 모두가 자고 있는 시간, 속잠의 불청객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밤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니 차고지에서 나오는 시내버스들이 보였다. 새벽 5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첫차가 시작했다. 이르지만 누군가의 하루가 이미 시작한 시간.
대전 서남부발 공항 리무진이 세종터미널에 도착하여 세종청사를 경유해 인천공항으로 달린다.
공항은 전날 개막한 월드컵으로 활기찬 분위기였다. 무비자가 풀린 지 얼마 안 되어 모두 해외여행에 대한 열망이 컸던 덕분일까. 탑승수속은 지연 없이 빠르고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졌다.
9시 5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1시에 도착했다. 규슈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맑아지더니 후쿠오카의 해안이 선명하게 보였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우려한 것과 달리 나쁜 날씨는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내 입국심사는 쉽지 않았다. 지문이 옅은 탓에 심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았고, 지문이 안되면 얼굴로 확인하는 인천공항과 달리 일본은 절차가 복잡한 나라답게 열개 손가락 지문을 다 찍게 하였다. 결국 어느 손가락도 지문이 잘 되지 않자 나를 통과시켜주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주소지 주민센터에 방문해 지문 재등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해 공항선을 타고 텐진역에 도착했다.
텐진역에서 나와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 유튜브로 본 익숙한 건물들이 보인다.
2박을 묵을 텐진 편집샵의 중심에 있는 숙소.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후쿠오카의 번화가 2곳인 텐진과 하카타 모두 묵어보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객실은 좁은 편이나 숙소에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여행 첫날 너무 많이 걸은 탓에 편집샵을 구경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텐진 길거리 구경만 실컷 하고, 텐진의 놀거리는 거의 이용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이 점을 염두하고 계획을 짜리라 다짐했다.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니시테츠후쿠오카로 왔다. 개찰구로 잘 들어와 놓고 라인을 찾지 못해 20분을 빙빙 돌았다. 결국 처음 왔던 플랫폼이 맞았고... 눈앞에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전철을 놓치고 말았다. 20분이 지나 오무타 선을 잘 탔지만 이번엔 환승을 못해 시간을 허비했다.
다자이후에 가기 위해선 후쓰카이치 역에서 다자이후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다자이후선은 단 2개의 역으로 아주 짧게 나있는 지선이다. 기껏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기이한 형태로 되어 있다. 환승 플랫폼도 바로 옆이 아니어서 가장 끝에 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구글 지도만 믿다가 한 정거장 뒤인 무라사키에 내리게 되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영어 방송이 나오는 도쿄 전철과 달리 규슈 니시테츠의 전철은 영어방송이 나오지 않아 더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무라사키에서 올라가 후쓰카이치에서 환승, 다자이후역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우메가에모찌. 이번 여행에서 일본에 도착해 먹은 첫 음식이다. 우메가에모찌는 다자이후의 명물로 유명한 떡이다. 근처의 다자이후 텐만구는 야오요로즈노카미 중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시는 신사다. 합격 기원을 드리기 위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 신사를 많이 찾기 때문에 합격떡이란 별병이 생겼다. 이 떡의 이름은 스가와라 공이 다자이후에서 유배 생활을 보낼 적에 어떤 노파가 가끔 떡을 가지고 와 무료함을 달래주었는데 공이 서거한 후, 떡에 매화 가지를 얹여 관에 넣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든다. 무려 국립박물관 씩이나 되는 박물관이 어째서 도심인 후쿠오카시가 아닌 다자이후시에 위치해 있는지. 그 이유는 다자이후가 옛 다자이후 지방행정부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자이후는 지리적인 위치상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매우 활발했고, 많은 사료와 문화재가 전해지게 되었다.
규슈 국립박물관에서는 상시전과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는데 상시전도 볼만하지만 흔치 않은 기획의 특별전이 매우 볼만하다. 내가 여행 첫날 무리하면서까지 이곳을 방문한 이유도 폼페이 특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폼페이 특별전은 1200엔 이상의 가치가 있는 전시였다. 고대 도시 폼페이의 번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단 1번의 화산 폭발로 이 번영했던 도시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사라졌다는 사실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는 6천 그루의 매화나무와 백 그루의 거대한 녹나무가 늘어져 있다고 한다. 개화한 매화나무로 가득한 텐만구는 더욱 아름답겠지. 기회가 된다면 봄에 재방문하는 것도 좋겠다.
다자이후에서 텐진으로 돌아가는 길. 올라올 때 개인 여행객과 수학여행 온 학생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붐비던 거리는 어느새 한적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전철에 몸을 싣는다. 나도 숙소로 돌아간다. 이때 식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2만 보 이상 걸어 정말 고된 상태였다.
프라자 호텔 프리미어에 도착해 체크인했다. 코로나 이후로 숙박세를 걷는 업체가 많아졌는데 숙박세는 지역에 따라 묵는 숙소나 객실의 요금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이 호텔은 숙박세를 받는 곳이었다. 숙박세는 1인 1박에 200엔으로 그리 비싸진 않다.
짐을 놓고 근처 텐진 대로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눈 앞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버스는 원래 목적지인 하카타역이 아닌 텐진 역 위로 올라가는 버스였고, 구글 지도에 표시해두었던 가게 중 신신이 가까워서 그냥 내렸다. 계획대로 여행 다니는 나 답지 않은, 가장 충동적이던 순간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줄이 길지 않았고, 5분 정도 기다려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메가에모찌 이후로 먹는 오늘의 제대로 된 첫끼. 메뉴를 3가지나 시켰다. 신신라멘에 볶음밥에 하이볼까지... 저 많은 걸 혼자 다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하카타 역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여기서 또 전철을 헷갈려서 시내 외곽으로 빠지는 라인을 타고 말았다. 고후쿠마치에서 내려 하카타역까지 20분을 걸어갔다. 발바닥이 빠질 것 같다.
첫날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온 이유는 JR 북규슈 레일패스를 교환하기 위함이다. 이번 여행은 북규슈의 5개 현을 모두 방문한다. 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이 5개의 현을 뚜벅이 여행객이 일주일 동안 모두 다니는 데에는 JR 레일패스가 가장 합리적이다. 나는 5일권을 구매했고, 가격은 13000엔 정도다. 이용일자는 여행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즉 바로 내일부터 기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많이 피곤해도 오늘 패스를 미리 교환하러 온 것이다. 레일패스 교환 줄이 길다는 정보를 입수한 덕분에 미리 방문했고,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첫날 밤보다 훨씬 줄이 길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하카타역 크리스마스 마켓을 실제로 보니 하카타에 왔음이 실감났다. 역시 연말의 일루미네이션은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발도 다리도 너무 아팠지만 여행 도중 캐널시티 분수쇼를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기다렸다. 우연히 계획 없이 들린 곳에서 마침 행사를 하고, 바로 중앙에 자리가 나서 앉고. 때로는 계획 없이 다니다 이런 우연과 행운을 마주치는 일도 제법 나쁘지 않다고. 몸은 고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캐널시티를 나와 텐진으로 향하니 자연스럽게 만난 나카스 강변. 평일이지만 포장마차 거리에는 술잔을 나누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다리 사이의 구조물 위에서 위험하게 노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술을 거하게 마신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무사히 잘 나왔길 바란다.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텐진의 숙소로 돌아와 씻고, 야식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마자 잠드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날 걸음 수는 29,247보였다. 다음 날은 비 소식이 있어 원래 가려던 나가사키 대신 고쿠라, 모지코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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