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4일. 미도리 하우스 텐보스를 타고 본격적인 기차여행을 시작한다.
규슈는 독특한 디자인의 특급 열차와 신칸센이 많아서 기차 여행을 하기 좋은 지방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규슈를 찾는 이유는 아마 온천 여행의 성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크게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3번째로 큰 섬인 규슈는 일본에서 '불의 나라'라 불린다.
규슈의 3대 온천하면 유후인, 벳푸, 구로카와를 말하지만 사실 그 외에도 좋은 온천 마을이 많다. 일본 3대 미인 온천 우레시노(사가), 지옥으로 유명한 운젠(나가사키), 가고시마의 기리시마와 이부스키 온천. 오늘은 이 중에서도 다케오 온센과 우레시노 온센으로 떠난다. 다케오시 인구는 약 47,000명(2020년 1월 기준), 우레시노시 인구는 약 25,000명(2020년 1월 기준)으로 두 시의 인구를 합쳐도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유후인을 두고 이 한적한 온천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엔 그 여정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2박을 묵었던 프라자 호텔 프리미어를 체크아웃하고, 하카타 역으로 이동한다. 앞으로 3일 동안은 한 호텔에서 1박씩 하며 계속 지역을 옮겨 다닐 예정이기 때문에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버스와 자전거를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하카타 역 앞에 도착했다. 누군가는 직장에 출근하고, 누군가는 학교를 가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난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교차로에서 얽히고 지나간다.
선로에 진입할 때부터 이 열차의 강렬한 주황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열차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 있는 테마파크, 하우스 텐보스의 개업에 맞추어 운행을 시작했다. 1992년 3월부터 운행했으니 곧 서른한 번째 생일을 맞는다. 하우스 텐보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서 그런지 열차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좌석을 채우고 있는 소수의 승객들은 모두 여행의 설렘으로 들떠 보였다.
날이 좋아 잎들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도시 하나 없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마을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건만 찾는 사람이 적어 안타깝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사가현을 잘 찾지 않는다고 한다. 2019년에는 여행한 적이 없는 도도부현 1위에 선정되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규슈는 총 7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가고시마현, 미야자키현. 사가를 제외한 다른 현들은 큰 도시나 산, 바다를 끼고 있지만 사가현은 다른 현에 비해 관광 특색이 부족하다. 비슷한 시골 마을은 어디에나 있고, 규슈에는 매력적인 온천마을이 많으니 굳이 사가를 올 이유가 없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사가의 대표 과자인 '니시키'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가시에 유명한 가게가 있다고 하는데 본점만 운영하고 후쿠오카 공항 면세코너에 지점이 없었다. 후쿠오카의 멘베이, 나가사키의 카스테라에 밀려 지역 과자 마저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나 보다.
타케오 온센 역에는 코인 락커가 있다. 혹시 궁금하실 분이 있을까 하여 사진을 올린다. 24인치, 28인치 캐리어가 들어갈 크기의 함도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다만 요금은 비싼 편이다. 코로나 이후로 가격이 인상되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코인 락커가 꽉 차진 않지만 이용객이 소소하게 계속 있었다. 짐을 넣고 열쇠를 잘 보관하는 것도 잊지 말자.
코인 락커에 짐을 보관하고 나오니 반대편에 카이로도가 보인다. 이번 여행에 방문할까 많이 고민했던 집이지만 2시간 후에 다케오 역에 돌아와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없었다. 앞서 이틀 동안 여행 중에는 항상 여유시간을 가져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케오 신사와 도서관만 가기로 했다. 아쉬운 대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양이 적지만 에키벤 상을 받은 적이 있는 도시락이니 궁금한 분들은 드셔 보시길. 참고로 사가규는 일본 내에서도 꽤 인정받는 소고기다. 최상위 등급으로 인정받은 소고기만 지역명에 규가 붙기 때문이다.
다케오 온센 역에서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요금이 너무 비싸다. 시간제 없이 일일권만 판매하나 보다. 코로나 이후로 요금 인상된 서비스가 많은 것 같다. 결국 걸어가기로 했다.
다케오 신사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가는 길에 삼각김밥을 하나 사 먹었다. 한국에 없는 이색적인 김밥을 먹고 싶어서 고른 타카나 명태 삼각김밥. 정말 맛있었다. 맛있는 것도 먹고, 보이는 풍경도 아름다우니 다케오 신사까지 가는 오르막이 힘들지 않았다.
다케오 신사 입구에 있는 부부 삼나무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두 그루의 나무를 잘 보면 뿌리와 맨 위의 가지가 합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부부나 연인, 엔무스비를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찾는다. 부부 나무를 지나쳐 왼쪽으로 올라가면 건물이 있다. 제법 잘 관리되고 있는 신사인 것 같았다.
토리이를 지나 단풍길과 대나무 숲을 지나면 그 끝에 3천년 된 녹나무가 서 있다. 얼마나 거대한지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그 위용이 담기지 않았다. 오직 눈으로만 담을 수 있었다. 녹나무를 보러 온 분들은 대부분 중년 또는 노년의 부부셨다. 모두 감탄하셨다. 이 날은 날씨가 무척 좋아 대나무 울타리 속에서 햇빛을 고스란히 받는 녹나무가 더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흐린 날에는 나무가 큰 탓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기괴함까지 느껴진다한다. 하지만 흐린 날에 와도 정말 멋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무였다.
녹나무를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다. 신사에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다케오 도서관으로 이동한다. 신사를 내려오면 바로 주차장이 하나 보인다. 바로 다케오 도서관의 주차장이다. 신사를 방문하실 분은 도서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시면 좋을 것 같다. 도서관 가는 길에 파란색 모자를 쓴 어린이 친구들을 보았다. 무얼 하는지 땅에서 뭔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이런 작은 소도시에도 아이들이 꽤 있다. 도시처럼 놀거리도 많지 않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며 행복하게 크기엔 참 좋은 곳이었다.
다케오 도서관은 2개의 건물이 있다. 메인 도서관과 어린이 도서관. 내가 방문한 곳은 메인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살펴보며 놀란 점은 3가지다.
첫째, 인구 5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에 잘 정비된 큰 도서관이 있다는 점.
둘째, 구색만 갖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좋은 책을 선정하여 보기 좋게 정리해둔 점.
셋째, 열람 공간에 신문을 읽는 노인 분들이 많았다는 점.
도서관의 책장을 살펴보며 한자 기반 언어라 일본어로 책을 내기까지 수많은 과정과 노고가 필요할 텐데도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이 번역되고 있는지 실감했다. 책과 친밀한 나라. 다케오 도서관에서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일본은 어느 지역을 가도 서점과 도서관이 있었고, 전철에서 스마트폰이 아닌 책을 보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딜 가도 혼자 글을 읽고, 여행을 하는 노인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언어, 지리, 문화, 역사. 수많은 배경이 만든 모습이겠지.
버스 시간에 맞추어 다케오 역으로 돌아간다. 마침 아까 본 학교에서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다. 걸어가는 학생,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 버스를 타고 가는 학생 등. 시골 마을이라 집이 외곽에 있는 학생도 많은 것 같다.
다케오 역에 도착하니 버스 시간까지 10분이 남았다. 코인 락커의 캐리어를 찾기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역 앞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우레시노 시로 이동한다. 우레시노 여행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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