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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이야기/9박 10일 홋카이도 뚜벅이 여행(2023)

노보리베츠, "혼토니 요캇타데스."

by 조각찾기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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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0일. 두 번째로 떠나는 해외 혼자 여행.

작년엔 공항버스를 타기 전 걱정과 설렘으로 잠들지 못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두 번째라고 제법 편해졌다.

 

이번 여행은 냥코 센세 없이 혼자 떠난다. 센세를 데려갔다가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엔 외로움을 느껴서 센세를 데려 올걸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두고 가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장마로 전날까지 많은 비가 왔다. 인천에서 제시간에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터미널까지 한 손에는 캐리어, 한 손엔 우산을 들고 가볍게 걸었다.

 

공항버스는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버스는 인천까지 2시간을 열심히 달렸다.

 

공항에 4시간 일찍 도착해 모든 수속을 여유롭게 처리했다. 시간이 엄청 남을 줄 알았지만 공항 구경, 사람 구경하다 보니 금방 탑승 시간이 되었다.

 

지난 여행보다 게이트가 가까워서 좋았다.

이번에 이용하는 항공사는 제주에어. 1월의 찜특가 이벤트에서 인천↔신치토세 왕복 항공권을 14만원에 구매했다. 삿포로 성수기 항공권이 60-70만원임을 감안하면 정말 거저다. 원하는 출발일, 도착일에 맞추기 위해 특가표를 잡기까지 2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에서 삿포로는 겨울이 인기다 보니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보다 삿포로 비행기표 구하는 게 더 쉬웠다.

 

어제 내린 비가 무색하게도, 인천의 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맑았다. 부디, 홋카이도의 날씨도 좋아야 할 텐데... 일기예보로 홋카이도 전체의 비소식을 들었지만 하늘이 변덕을 부려 맑은 하늘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런! 내 기도가 먹히지 않았다. 홋카이도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점점 뿌예진다. 회색빛의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맑음은 포기할 테니 비라도 안 왔으면 좋겠다.

 

드디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12시 20분에서 출발 예정이었던 제주에어 1902편은 지연으로 30분 늦게 이륙하였고, 신치토세 공항에 예상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하였다. JR 미나미 치토세역에서 16시 38분에 출발하는 특급 열차를 타지 못하면 오늘 묵는 호텔의 체크인 시간을 초과한다. '기차를 놓치면 석식도 못 먹고 택시비도 거하게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10분 만에 입국 수속을 끝내고 JR 방향으로 달렸다. 미리 길을 알아둔 덕에 막힘 없이 개찰구 옆 센터에 도착했다. 같은 비행기를 탄 여행객들이 몰리기 전에 서둘렀다.

 

서두른 덕에 대기 없이 바로 레일 패스를 교환했다. 여행 첫날인 오늘(6월 30일)부터 7월 6일까지 7일 동안 함께하는 티켓이다. 매우 비싸고 소중한 녀석이기 때문에 여권, 지갑, 휴대폰과 함께 수시로 잘 있는지 체크했다. 당장 타야 하는 기차와 내일 도야 역까지 가는 기차의 지정석 표도 미리 발권했다. 창구의 직원들이 외국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혀 어려워할 필요 없다. 일처리도 매우 빠르다. 패스를 교환했다면 지정석 티켓도 함께 발권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 묵는 숙소는 노보리베츠의 해안에 있는 '호텔 이즈미'. JR 노보리베츠 역에서 도보 20분 거리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노보리베츠역에 가기 위해서는 1번의 환승이 필요하다. 신치토세 공항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미나미치토세역에서 특급열차로 환승해야 한다. 공항에서 미나미치토세까지는 쾌속 에어포트로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바로 내리기 때문에 지정석을 예약할 필요도 없고, 10~15분에 1대씩 있어서 가장 빨리 오는 쾌속을 타면 된다. 단, 환승하는 플랫폼까지 짧은 통로를 넘어가야 하므로 여유 있게 5분은 잡자.

 

레일 패스를 교환할 때 기차 시간, 기차 이름, 탑승 플랫폼이 적힌 종이를 따로 주셨다. 미나미 치토세에서 20분 동안 스즈란 8을 기다렸다.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게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휴대폰에 끼운 유심이 말썽이라 곤혹이었다. 데이터가 되지 않을 시 매뉴얼이 따로 있었지만 와이파이가 없어서 이도저도 못한 채... 공항에 도착해 기차에 타면 호텔 측에 연락을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연락이 안 왔다는 이유로 노보리베츠 역 앞에 송영 버스가 안 오면 어쩌지, 걱정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즐기자. 조급한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노보리베츠 역에 송영버스가 오지 않으면 택시를 타면 될 것이 아닌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스즈란 8이 도착했다. 무로란행이라 호쿠토가 아닌 스즈란 특급 열차였다. 규슈에서 봤던 기차에 비하면 굉장히 점잖고 무난하게 생긴 녀석이다. 디자인도 참 심플하다. 스즈란 특급 열차는 5량으로 4호차만 지정석(U-seat)이다.  

 

나는 4호차의 바다가 보이는 좌석에 앉았다. 지정석 예약할 때 바다가 보이는 좌석으로 부탁드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시골 그 자체. 인프라도 열악한 데다, 겨울에 눈까지 오면 보통 힘든 게 아닐 텐데. 그래도 사람이 사는 주택이 있고, 누군가의 직장인 공장도 보인다. 다 사람 사는 곳이다. 나도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크고 자랐지만 전혀 무료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내 시선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재단하는 것은 섣부르고, 오만한 일이겠지.

 

기관사님이 매 역에 도착할 때마다 안전을 확인하신다.
정말 시골 역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Welcome to Noboribetsu!

 

역시 홋카이도하면 불곰이다. 아이누어로 불곰은 키문카무이, 즉 '산의 신'이라고 불린다. 에조 불곰은 지금도 홋카이도의 산에서 서식하고 있다. 홋카이도를 여행하다 보면 박제한 곰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가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곳에 곰이 종종 세워져 있다.

 

가운에에 있는 갈색 건물은 이번 여행에 숙박을 고민했던 게스트하우스다. 역시 해안의 호텔이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에 묵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동안 들었다.

세상에... 비가 겁나게 많이 온다... 어느 정도냐면 일단 숙소까지 도보로 가는 건 불가능한 정도였다. 위험했다. 인근에 호우 피해가 있는지 소방차가 지나다녔다. 이대로 송영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픽업 시간인 17시 40분이 다가올수록 조마조마했다. 호텔에 기차를 탔다고 연락을 못했으니 버스가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내가 투숙객인걸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급한 대로 태블릿에 호텔 이름, 내 영문 이름, 픽업 시간을 적어서 들었다. 

 

다행히 송영 버스가 약속한 시간에 데리러 왔다.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다는 기사님의 말씀에 휴대폰 문제로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하니 오늘 일본 전국에 엄청난 비가 내려 전기가 끊기는 곳이 많다고 하셨다. 잘 도착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나도 "本当によかったです。"를 연신 말하며 버스에 탔다. 이때의 에피소드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지난 규슈 여행에서도 오코시키 해안을 보러 갔던 때가 가장 아슬아슬하고 극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데,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노보리베츠역 바로 이전 역인 고조하마역 주변에는 해안의 료칸이 몇 개 있는데 호텔 이즈미까지 묶어 함께 송영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숙소에 미리 연락하면 노보리베츠역 앞으로 버스가 데리러 온다. 체크인뿐만 아니라 체크아웃 시에도 이용 가능하다. 20분에 1대씩 운영한다. 숙소 근처에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간식이나 주류를 미리 사 오는 것이 좋다. 나는 석식(스키야키 정식)이 포함된 옵션으로 숙박을 예약했기 때문에 따로 음식은 사지 않았다. 편의점에 들를 시간이 없기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포근하고 따뜻한 공기에 '아, 잘 도착했구나.'하고 안심이 되었다. 바로 체크인하고 객실까지 안내받았다. 지하 1층은 온천, 1층은 체크인 카운터와 식당이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어 캐리어를 객실층까지 옮겨주셨다. 객실은 총 25개. 나는 2층의 객실로 배정받았다.

 

다다미방은 3명이 누워도 충분할 만큼 매우 넓었다. 홀로 쓰기엔 과분한 방이다. 에어컨이 없어 더위를 많이 타는 분들은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다. 객실 내에 욕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샤워는 지하 1층의 온천을 이용해야 한다. 옷장에 여분의 유카타가 많아 참 좋았다.

 

웰컴 드링크 쿠키와 녹차. 쿠키가 맛있었다.

 내가 이 호텔을 예약한 이유. 바로 객실 창문에서 보이는 태평양이다. 하지만 짙은 안개에 삼켜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마운틴뷰로 예약했지만 일찍 예약을 한 덕인지, 기껏 바다가 많이 보이는 객실로 배정을 받았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 운치가 있거니 하고 좋게 생각했다. 일단 여행 첫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 좋은 객실에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석식시간인 19시까지는 1시간 여유가 있었다. 식사 전에 온천을 하는 것. 이것이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다. 짐을 챙겨 바로 지하 1층의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은 정말 끝내줬다. 실내 온천, 그리고 사진처럼 바다와 산이 모두 보이는 노천탕이 있다. 노보리베츠 온센의 유황 온천과는 다르다. 노보리베츠 해안의 온천은 도라지마 온천으로 약알칼리성의 저장성 고온천이다. 물이 아주 미끌미끌하다. 작년에 갔던 사가 우레시노의 온천은 피부에 달라붙는 미끄러움이었다면 도라지마의 온천수는 피부를 어루만지는 미끄러움이다. 더 가볍고 산뜻하다.  날씨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팔을 내밀고 손바닥에 떨어지는 시원한 빗방울을 맞는 온천도 최고였다. 여름의 노천탕보다 눈이 내리는 겨울의 노천탕이 더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름의 노천탕에는 비 오는 온천이 있다. 시원한 공기와 빗방울, 최고의 수질에 만족한 나는 밤에 다시 한번 온천을 찾았다. 깜깜한 와중 맞는 빗방울 역시 낭만이 가득했다.

 

석식은 스키야키 정식. 사시미와 츠케모노, 밤요리, 돼지고기요리, 젓갈, 스키야키, 치즈 양파 그라탕 등이 나온다. 사시미는 참치와 연어가 맛있었고, 스키야키는 버섯과 양파가 맛있었다. 역시 스키야키 고기는 날계란에 적셔 먹는 게 제맛이다. 젓갈은 오징어 젓갈 같았는데 우리나라의 빨간 오징어 젓갈만 모다가 간장 베이스 젓갈을 보니 낯설고 재밌었다. 디저트는 초코 파운드와 자몽. 무난하게 맛있었다. 나온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으니 배가 불렀다. 외부에서 간식을 사 오지 않아도 충분했다.

 

(좌) 식당 가는 길에 오미야게를 판다. (우) 1층 홀.
체크인 후 18시에 찍은 1층 홀의 쉼 공간
저녁식사 후 20시에 찍은 1층 홀의 쉼 공간

저녁식사를 마치고 1층의 홀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해가 있을 때와 분위기가 딴판이다. 하지만 밤의 고즈넉한 느낌도 좋다. 1층에 나 혼자라 전세 낸 기분이었다. 15분에 100엔인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고 있으니 극락이 따로 없다.

 

 호텔 내부에는 음료 자판기, 주류 자판기, 우유 자판기가 있다. 딸기 우유가 가장 인기였다. 온천을 끝내고 마실 흰 우유와 딸기우유를 하나씩 뽑았다. 딸기 우유가 더 맛있었다. 다음에는 이치고만 마시리.

 

 객실로 돌아와 쉬면서 TV를 봤다. 호우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날 일본 대부분 지역에 비가 내렸고, 특히 규슈와 산요의 야마구치현에 많은 비가 내렸다. 홋카이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홋카이도가 우리나라 면적의 80%로 매우 거대한 섬인데도, 홋카이도 전역에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 전선의 영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뉴스를 보면서 내일도 비가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하늘에 맡길 수밖에. 호텔 이즈미에 묵은 것만으로 노보리베츠에서는 충분히 만족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여행, 체력을 많이 써야 하는 일정이다. 부디 사고 없이 무탈히 여행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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