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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이야기/9박 10일 홋카이도 뚜벅이 여행(2023)

토야코, 화산 활동으로 태어난 거대한 호수

by 조각찾기 2023.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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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리베츠와 도야호. 두 곳을 모두 일정에 넣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1안은 노보리베츠 > 하코다테 > 도야호 > 아사히카와

2안은 도야호 > 하코다테 > 노보리베츠 > 아사히카와

3안은 노보리베츠 > 도야호 > 하코다테 > 아사히카와

 

1안과 2안은 도야호나 노보리베츠 한 곳을 당일치기로 가야 했다. 오래 기차를 타지 않고 중간에 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버스 시간을 더 치밀하게 알아봐야 했고, 도야호를 당일치기로 가면 불꽃놀이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3안으로 결정했고 노보리베츠에서 1박, 도야호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여행 둘째 날은 매우 화창하여 안전하게 등산을 할 수 있었고 도야호의 불꽃놀이도 볼 수 있었다.

 

키하 261계 동차

노보리베츠역에서 도야역까지는 호쿠토 열차로 42분이 걸린다. 호쿠토는 스즈란과 외관이 비슷한데 홋카이도 열차 운행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호쿠토 열차는 우리말로 하면 '북두칠성 열차'다. 1965년, 아사히카와와 하코다테를 종점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가 1980년, 삿포로가 점차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가 되면서 삿포로와 하코다테를 종점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신하코다테호쿠토까지 신칸센이 연결되면서 호쿠토 열차는 하루 왕복 12회 운영하게 되었고, 하코다테와 무로란 중 어디를 기점으로 하느냐에 따라 열차의 종류가 달라졌다. 호쿠토는 하코다테, 스즈란은 무로란을 기점으로 하지만 두 열차가 비슷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후의 홍차 밀크티는 가장 좋아하는 음료다. 일본에 가면 꼭 사먹는다.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고등어 오니기리. 노보리베츠역 자판기에서 산 오후의 홍차 밀크티. 나의 점심이다.

 

노보리베츠 근처에는 공장이 많은데 외국인 노동자가 많고, 노보리베츠시가 인구 유입을 위해 이들의 일자리, 거주, 진학을 지원하고 있다.

호쿠토 열차의 지정석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2/3 정도 자리가 차 있었다. 

 

도야역 도착. 14시 8분.

토야코정은 인구 약 8000명(2023년 5월 기준)의 소도시다. 노보리베츠시의 46000명에 비하면 정말 적은 인구다. 하지만 도야 역은 노보리베츠보다 훨씬 크고 깨끗했다. 도야역의 역사는 1928년에 시작하지만 2008년에 도야 호수에서 제34회 G8 정상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JR 도야역
홋카이도의 여름하면 역시 꽃이다.

14시 23분에 오는 버스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었다.

 

도야역 안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통로가 있다.

민가 주변이 이정도 오르막이라니. 역시 화산으로 생긴 지형답다.

 

초등학교 앞에서 도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2분 지연되어 25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이 멋지다. 태평양 바다가 잘 보인다. 높은 산과 나무를 보며 내가 대자연 홋카이도에 왔음을 실감했다.

시골 버스라 자리가 여유 있을 줄 알았건만. 버스 안은 도야코정에 사는 현지인과 도야 호수에 가는 관광객으로 꽉 찼다. 캐리어를 들고 타는 분이 어찌나 많던지. 운전석 뒤에 딱 한 자리 남아있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힘들었지만...

 

도야 온센 터미널에 내렸다. 요금은 340엔. 터미널에서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까지는 도보로 5분. 천천히 걸으니 10분이 걸렸다.

 

게스트하우스 판코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마침 체크인 오픈 시간이었다.

 

체크인 카운터와 1층홀

체크인후 방을 안내받았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서 외투를 챙겼다. 도야 호수는 칼데라 호수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고도가 높다. 즉, 여름이어도 산 아래보다 바람이 강하다. 해가 지면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여름에 오더라도 얇은 겉옷은 필수다. 날씨 역시 시시각각 바뀌고, 같은 산 위여도 어디는 흐리고 어디는 맑다.

 

공원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
(좌) 경찰서
(우) 도야코 방문센터

돌아오는 유람선의 마지막 시간이 16시 30분이라고 하여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원래는 우스산 전망대에 가고 싶었지만... 뚜벅이 여행객이 가기에는 너무 어렵고, 가는 교통비와 로프웨이 요금도 무시할 수 없었다. 대신 도보로 갈 수 있는 작은 분화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도야호수 방문센터가 있어 잠시 들렸다.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호수에서 매우 가까우니 시간이 되면 방문해보자. 

 

 시코쓰 토야 국립공원은 194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시코츠호 구역, 토야호 구역, 노보리베츠 구역, 조잔케이 구역, 요테이산 구역까지 총 5개의 구역이 있다. 5개의 구역을 이으면 오각형 모양이 된다. 

 토야는 아이누어로 호수를 뜻한다. 키문 토(산의 호수)라 불렸다. 면적은 70.7㎢, 둘레 46km, 수심 117m로 호수 한 가운데에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4개의 섬이 있다.

 처음 활화산이 폭발해 분화구가 호수가 되면서 토야코가 생겼고, 10만 년 후 호수 둘레에서 분화한 화산이 우쓰산이다. 우쓰산은 현재도 활동 중이며 가장 최근의 폭발은 2000년이다. 2000년의 분화로 일부 지역 주민이 이주하였고, 폐허가 된 마을이 지금도 남아있다. 내가 보러 갈 분화구 역시 이때의 흔적이며, 산책로로 가는 길에는 폐허가 된 마을이 보존되어 있다.

 

도야코정에 있는 나무의 종류
2층에서 촬영한 사진

도야 호수의 수심은 179.7m로 송어, 홍연어, 빙어 등이 살고 있다. 산에는 다양한 조류와 소동물, 불곰 등이 산다. 산에서 불곰의 발자국을 본다면 곧바로 돌아가야 한다. 홋카이도는 정말 불곰이 나온다. 정해진 낮시간에 등산로와 산책로를 이용해야 한다. 트레킹 계획이 있다면 혼자보다 둘 이상 다니는 것이 좋다.

 

콘피라 화구 재해 유구 산책로.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면 작은 관리소가 하나 있다. 직원 한분이 상주하고 계신다.

http://www.town.toyako.hokkaido.jp/tourism/footpath/ftp002/

 

洞爺湖町 - Toyako Town

フットパス・散策路 金比羅火口災害遺構散策路 2000年3月の有珠山噴火の生々しいい爪痕、金比羅火口群。洞爺湖温泉街近くにあり、アスファルト舗装の散策路があります。噴火被災を受けた

www.town.toyako.hokkaido.jp

 

아스팔트길은 멀리 보이는 폐건물까지. 이 길이 정말 아름답다. 저 계단 위를 올라서면 넓고 푸른 도야 호수가 보인다.

 

산책로에 표식이 잘 되어 있으니 숫자를 따라가면 된다. 1번부터 6번까지는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가 섞여 있는 코스다. 반드시 긴바지를 입고 등산할 것. 도중에 만난 외국인 여행객은 등산 스틱을 가지고 있었다. 폴을 가지고 산책하는 것이 납득될 만큼 난도가 있다. 엄청 어렵진 않지만 쉽다고 할 수 없는 산책로다. 산책로... 라기보다는 등산로에 가깝다.

 

7번을 발견했다면 왼쪽으로 가자. 우회전을 해서 쭉 가면 차도와 이어진다. 차도는 주차장과 이어져 분화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지만 이 전망대를 갈 거라면 애초에 자전거를 대여해 잘 포장된 차도를 달리면 된다. 이왕 산책로로 왔다면 왼쪽으로 가서 분화구를 코 앞에서 보자. 단, 분화구까지 지면의 경사가 높고, 전날 비가 왔다면 흙이 단단하지 않을 수 있다. 조심해서 오르자.

 

콘피라 화구중 하나인 Yu-Kun crater

위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도야호가 11만 년 전에 생기고, 10만 년이 지나 호수 주변에 다시 화산이 분출하면서 '우쓰산'이 생겼다. 우쓰산이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분화하여 만들어진 것이 종상 화산인 '쇼와신산'. 쇼와신산은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쇼와신산은 활화산이며 가장 최근 활동은 2000년이다. 2000년 3월의 분화로 도야코조의 일부 마을이 피해를 입었으며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무료로 개방하였고, '니시야마 산로구 화산 산책로'와 '콘피라 화구 재해 유구 산책로'를 조성했다. 내가 방문했던 날, 정기점검이 있었는지 안전모를 착용한 직원 여러 명이 재해유구를 살피고 있었다. 관리소 옆에 모금함이 있었던 것 역시 재해유구를 보존하기 위함으로 도야코정에서 이곳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느꼈다.

 분화구는 딱 내가 생각한 만큼의 규모였다. 작지도, 무진장 크지도 않았다. 그냥 컸다. 특이한 점은 물의 색. 겨울에 온다면 얼거나 비쩍 말라 볼품없을 것 같지만... 여름에 방문해서일까? 물이 제법 차 있었다. 도야 호수의 쨍한 파란색과 다른 옥색의 물. 연기가 올라오고 있지는 않지만 보통 호수가 신비한 색을 띠면 물의 성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강한 알칼리나 산성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도야 호수 중앙에 있는 4개의 섬, '나카지마'. 바로 저 섬에서 G8 정상 회의가 열렸다. 섬 입구에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는데 사진의 유람선은 이 박물관과 도야 호수 가장자리를 왕복한다. 시간이 된다면 유람선을 타보자.

 토야코를 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오르막 흙길 위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했다. 자칫 방심하면 화구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양 발과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분화구와 호수를 감상했다. 호수에 비해 지대가 많이 높지 않아 호수 전경을 앵글에 담을 수 없었다. 전부 다 담으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아 그나마 건진 사진이 호수의 2/3만 찍은 사진이다. 호수를 위에서 보려면 사일로 전망대를 가거나 우쓰산으로 가서 로프웨이를 타고 산을 올라야 한다. 아쉬운 높이지만 도야 호수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 넓은 호수가, 비행기에서 바라보아도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8일 뒤의 일이다.

 산책로가 산보와 등산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라 분화구까지 오는 길이 낭만적이진 않았다. 전날 비가 와서 땅이 무른 곳도 많았고, 분화구에 가까워질수록 소동물의 발자국은 늘어났다. 오전에 노보리베츠에서 뱀까지 만났으니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서 분화구의 갈림길이 차도와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때 겁먹을 필요가 없었음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 당시엔 아무것도 몰랐으니...  '해가 지기 전에 어서 내려가야지.', '하늘이 더 흐려지기 전에 내려가야지.', '다들 여럿이 오는데 왜 나는 무모하게 혼자 온 걸까?' 하면서 갈길을 서둘렀다. 풍경을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가파른 땅에 힘들게 서 있는 터라 여유롭게 관망할 처지가 아니었다.

 

 부지런히 내려가 다시 산책로 입구에 도착했다. 민가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드니 긴장이 확 풀렸다.

 분화구를 직접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재해유구만 보기를 추천한다. 이곳에서 보는 호수도 충분히 멋지다. 물론, 렌터카 여행객이라면 전망대나 우쓰 산을 가면 되지만 도보 여행객은 전망대에 가기 힘드니... 뚜벅이 여행객이 도야호수를 충분히 보려면 2박을 꽉 채워야 할 거다. 물론, 박물관 관람이나 대자연 감상을 좋아하는 내 기준이지만 말이다.

 

(좌) 사쿠라가오카 맨션. 원래 3개의 동이었으나 1동만 보존중이다. (우) 코노미 다리

토석류에 묻힌 다리와 맨션.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 다리였는지, 누가 살던 맨션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이었고, 누군가의 고향이었던 마을. 모두 밀어버리고 분화구로 가는 길을 다 닦아 데크나 아스팔트로 채울 수도 있겠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모든 흔적을 지닌 이 유구가, 초라하고 황폐해도 충분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힘을 사람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사진의 댐은 화산 활동으로 인한 토석류를 막기 위해 설치되었다.

관리소에 돌아오니 다섯 시 반. 온몸은 땀에 절었고, 다리는 퉁퉁 붓고, 배는 고프다. 하지만 배보다 발먼저 어떻게 하고 싶다. 마침 도야코정에 무료 족욕탕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구글 맵에 검색하니 가장 가까운 족욕탕이 도보 10분. 호수를 따라 쭉 걸으면 나온다. 아직 호수를 가까이에서 못 봤으니 호수 구경을 하고 족욕을 하면 딱 맞겠다 싶었다.

 내 다리야, 조금만 더 버텨주라. 내 배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몸을 달래 가며 호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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