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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해외/5박 6일 구마모토 뚜벅이 여행(2024)

히토요시, 소박하고 느긋한 온천 여행

by 조각찾기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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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미야 신사에서 사가라 온천까지는 도보로 2.3km. 걸어서 30분이니 산책으로 딱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기에 걷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내 몸은 아주 멀쩡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없던 힘도 마법처럼 생긴다.

 

점점 멀어져 가는 토토로의 숲.

 

더 작아졌다.

 

다리까지 오니 숲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제법 민가와 주차장, 편의점이 보였다. 논밭이 많고 약간의 상점이 있었다. 내가 자란 곳도 이 정도 인프라의 시골이었다. 주변에 또래는 없었지만 자연이 내 친구요, 집에 있는 수많은 책들이 내 친구였다. 이면지를 잔뜩 쌓아놓고 그림만 서너 시간 주구장창 그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게 됐고, 하고 싶은 일도 명확하지만, 외로운 어른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외로움이 안락하게 느껴질 때도 있으며 고독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은 그 고독에 파묻혀버릴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음악을 듣고, 나츠메 우인장을 본다. 그만큼 나츠메 우인장은 내게 많은 힘과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잘 정비된 인도를 걷다가 호기심에 논밭의 길로 들어왔다. 이쪽으로 가는 편이 재밌을 것 같았다.

 

오, 다행히 길을 잘 찾아왔다. 사가라 온천 표지가 보인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온천 여행의 묘미를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수많은 일정 사이에 온천을 넣을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22년의 북규슈 여행은 기차를 타고 여러 현을 옮겨 다니느라, 23년의 홋카이도 도서여행은 온천이 유명한 지역이 많지 않아 즐길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온천이 유명한 히토요시에서 3박을 한다니, 이건 온천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상황 아닌가! 이번엔 각잡고 온천을 테마로 잡았다.

 

 사가라 온천 가는 길에 나츠메 유치원이 있었다. 하루야마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께서 사가라 온천 근처에 이 유치원이 있다고 알려주셨는데 정말 이름이 나츠메였다. 혹시 나츠메의 이름이 이곳과 관련된 건 아닐까 재밌는 의심을 해보았다.

 마침 아가들이 야외에서 놀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한 귀여운 여자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공을 들어 옮기려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잠시 멈추어 바라보았다. 아~ 나도 저만할 때가 있었는데... 저때가 참 좋지 싶다가도 저렇게 사랑스러운 시절을 눈으로 담고 평생을 기억할 수 있는 어른 쪽이야말로 더 많은 행복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 제법 규모가 크다. 주차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사가라 온천은 료칸과 대욕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온천이다. 어제 만난 작가님께서 이틀 후에 묵는다는 곳이 바로 이곳. 주차장을 채우고 있는 차들을 보니 좋은 물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온천 입구에 버스도 정차해서 시간만 잘 맞추면 히토요시 시내에서 바로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계획을 짤 때 온천을 먼저 갔다가 신사와 하루야마에 가는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 공교롭게도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만약 히토요시에서 온천 여행을 할 분이라면 사가라처럼 교외가 아니어도 히토요시 시내에만 20개의 온천이 있기 때문에 시내 온천 도장 깨기도 추천드린다.

 

 그럼 가볼까!

 

건물로 들어와 복도를 따라가면 료칸 시설이 있고, 왼쪽에는 매점과 대욕장이 있다. 나는 당일온천만 이용하면 되니 왼쪽으로.

 

 안으로 쭉 들어오면 자판기가 있는데 여기에서 온천권을 구매해서 입구에 있는 카운터 직원분께 보여드리면 된다. 표는 따로 회수하지 않는다. 직원 분들이 매우 친절하셔서 기억에 남는다.

 

온천 효능이 좋은가보다. 기대감이 부푼다.

 

복도에 토토로의 숲 그림이 있었다. 흐린 날의 풍경 같은데 스산하기보단 편안하다.

 

왼쪽은 여탕, 오른쪽은 남탕. 홀에는 음료, 아이스크림 자판기와 소파가 있다. 

 

탈의실 내부의 모습. 얼마 전에 분실 사건이 있어서 귀중품은 꼭 코인락커에 보관하라는 안내장이 있었다. 나는 귀중품도 없거니와 훔쳐갈 만한 물건도 없어서... 그냥 바구니에 물건과 옷을 넣었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대욕장(실내탕) 사진. 사유리는 탕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다. 실내는 온탕, 저주파탕, 냉탕이 전부다. 어제 갔던 호타루 온천과 비교하면 아쉽지만 물 자체는 매우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젊은 사람이 혼자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니 어르신께서 자리를 비켜줄 테니 이쪽에서 해보라고 양보해 주셨다. 여행하는 동안 느낀 거지만 히토요시는 정말 친절한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온탕을 즐기고 냉탕으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만난 어르신과 노천탕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일본을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다. 한국에서 왔다 하면 보통 한국 드라마나 K-POP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니면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이런 주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정치, 외교, 경제 등 시사적인 질문을 받았다. 현지인과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놀라웠고, 먼저 그런 질문을 하셔서 놀란 것도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현재 일본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이 옛날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일본에서 자민당이 얼마나 뿌리 깊게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말씀이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엔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형제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의 병역의무 기간에 대한 이야기, 어르신의 건강 이야기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떠나실 때, 노천의 물은 원천에 가장 가까워서 온천의 마지막은 노천탕으로 해야 한다는 팁을 알려주시고 떠나셨다. 나중에 또 사가라 온천에 오라는 말씀과 함께.

 

밤에 노천탕을 하면 별이 아주 잘 보인다고 한다.

 

딸기 우유를 먹고 싶었는데... 흰 우유와 커피 우유뿐이다. 슬프다...

 

아쉬운 대로 정원이 보이는 다다미 방에 앉아서 홍차를 마셨다.

 

1시간 남짓의 짧은 온천을 뒤로하고 나서는데 SL 히토요시의 그림이 보였다. SL 히토요시는 일본에서 현재 운행하는 증기기관차 중 최고령이다. 2020년의 수해 전에는 구마모토 역과 히토요시 역을 달렸으며 기차에서 보이는 풍경과 녹음이 아름다워 일본 3대 기차 풍경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24년) 3월 23일을 끝으로 히토요시는 운행을 마치고 영원히 잠들게 된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이 기차를 타려면 탈 수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출국하려면 구마모토 남부에서 무조건 올라가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에 단 한 번 출발하는 이 열차를 타려면 그날의 모든 일정을 기차 시간에 맞추어야만 했다. 그러기엔 마지막 3일에 하고 싶은 여행의 컨셉이 너무 명확했다. 무엇보다 구마모토~히토요시가 아닌 구마모토~토스 구간을 달린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내 상상 속에 있는 히토요시는 경쾌한 경적 소리를 내며 푸른 구마가와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내 상상 속의 SL은 이제 탈 수가 없으니까...

 

입구 앞에서 히토요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하루 3대 있으며 10시 21분, 13시 51분, 17시 51분.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다른 버스를 타러 조금 걸어가기로.

 

사가라미나미 소학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히토요시 시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 11대 있다. 13시와 17시에는 버스가 2대. 일본 시골에선 특정 시간대에 배차를 늘려 운영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버스가 도착했다. 이 정류장에서 가는 버스는 히토요시행 하나뿐이라 헷갈릴 필요 없이 그냥 타면 된다.

 

버스로 8분 이동(260엔)

 오전에 탄 버스보다 작은 마을버스였다. 히토요시는 시내버스 차종이 다양했는데 이 지역만 그런 것인지 다른 지역도 차종이 다양한지 궁금해졌다.

 

키타칸조지 절에서 내렸다. 바로 옆에는 커다란 발전소가 있었다. 발전소 옆에 주택 지구가 있는 풍경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10분 남짓 걸어 미스미 서점에 도착했다. 히토요시 인터체인지가 보인다. 일행이 도착하기까지 30분가량 남아 서점을 구경하기로 했다.

 

"역시 히토요시!!" 나츠메 코너가 따로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나츠메 우인장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알 수 있었다. 매년 있는 불꽃놀이 행사 포스터도 무척 신경 써서 디자인한 것이 느껴진다. (포스터... 여분이 있다면 가지고 싶다...) 

 나츠메 우인장은 애니메이션 6기까지 제작되었으며 ova가 2화, 극장판이 2편이 있다. TVA 애니메이션, 극장판의 블루레이가 모두 있었다. 일본은 내수 시장이 매우 크고, 일찍부터 콜렉터 문화가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 비해 블루레이 판매량이 줄어들었지만 인기작품은 몇만 장씩 팔리고 있다.

 

 나츠메 우인장의 블루레이 판매량은 매우 좋은 편이다. 브레인즈 베이스가 제작한 1~3기는 평균 만장, 4기는 약 9200장을 팔았다. 3기가 나왔던 2011년은 일본의 경기 불황이었는데도 1~2기의 판매량을 유지하였으니 작품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기부터는 슈카가 제작을 맡았고, 5기의 판매량은 약 5200장, 6기의 판매량은 약 3000장이다. 보통 순익분기점 기준이 3000~5000장 수준인데 나츠메 우인장은 장르가 요괴, 힐링이라 액션신처럼 고도의 작화 기술, 수많은 프레임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손익분기점 라인이 3000장 수준이 아닐까 싶다. 팬층이 두텁고 유행을 타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에 원작의 분량만 충분하다면 계속 제작이 될 것 같다.

 참고로 만화는 월간 연재다. 단행본의 미도리카와 유키 선생님 코멘트를 보면 아직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하시니 적어도 10년은 더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니, 그냥 평생 연재해 주셨으면...!

 

 요즘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장송의 프리렌」. 제작사는 매드하우스, 감독은 사이토 케이이치로. 인기에 힘입어 1기는 2쿨 분량으로 공백 없이 연달아 방영 중이다. 정통 판타지의 목마른 대중의 니즈를 만족한 작품이며 캐릭터의 설정과 디자인도 좋다.

 최근 일본의 소년지는 다크한 풍의 작품이 많다. 원래도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이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젊은 세대도 일률적인 교육, 어려운 경기, 인간관계의 고독을 피부로 느끼고 자라온 세대라 작품들도 점점 어두워지는 게 아닐까 싶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부족한 캐릭터가 많은데, 이것이 독특하게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인기를 얻고 있다. 나도 그런 캐릭터들이 좋은 걸 보면, 나도 젊은 세대의 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된다.

 장송의 프리렌은 2023년 4분기 작품 중 내가 유일하게 챙겨본 작품이다. 작년에 봇치더락을 보고 "이거 만든 사람 누구야?! 감독이 누구지?"하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같은 감독이 프리렌을 맡았다. 시간이 된다면 꼭 챙겨보길 바란다. 연출이 정말 좋다.

 

주간지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귀멸의 칼날은 2020년 원작이 완결되었고, TVA 애니메이션 4기가 올해(24년) 5월에 방영 예정이다.  스파이 패밀리는 슈에이샤의 소년 점프 플러스에서 연재 중이며 아직 100화도 연재되지 않아서 앞으로 TVA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을 번갈아 만들 것 같다. 글을 쓰는 오늘, 첫 극장판이 한국에서 개봉했다.

 

 여기부터는 일행이 있어서 개인적인 일정은 최소화했다. 비행기 일정이 그대로였다면 히토요시에서 혼자 하루를 더 보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을 텐데, 1.5일 동안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말 바쁘게 다녔다. 다음엔 불꽃놀이 시즌에 와서 일주일을 머물고 싶다. 규슈의 여름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팬심으로 더위를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그 여름이 멀지 않은 때에 오기를 희망하며 여섯 편의 홀로 나츠메 투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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