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게 도착했건만 둘째 날 늦잠을 잘 여유는 없다.
내게 주어진 하루하고 반나절동안 나츠메 우인장과 관련된 이런저런 곳을 가려면 부지런히 다녀도 부족하다!
잠자리가 편안한 덕분일까? 푹 잔 덕에 다행히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 8시 반, 안개가 자욱했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을 완벽히 그려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편의점으로 아침을 사러 가는 길. 어제는 깜깜해서 보지 못했던 마을의 도로와 건물들. 평일 아침인데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너무 없어 시골은 시골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3분 거리의 패밀리 마트.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본격적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자전거를 조정하고 있는데 마침 숙소 주인 분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른 아침부터 나가는 거나며, 괜찮으면 옆건물(홀)에서 전시회를 하니 이따 보러 오라고 하셨다. 몇 시까지 가면 되는지 여쭤보니 5시까지 한다고 하셔서 시간이 되면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전날 체크인 때 받은 자전거 열쇠. 이틀동안 언제든지 자유롭게 타라면서 키를 주셨다. 원래는 "헬로 사이클링"이라는 전동 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할 예정이었는데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주신 덕분에 경비를 아꼈다. 오래되고, 브레이크를 걸 땐 끼익 소리가 크게 나는 낡은 자전거였지만, 아주 깔끔하고, 앞으로 아주 잘 나아갔다. 헬로 사이클링 대여는 안 해봤지만 아마 전동 자전거를 빌렸으면 중간에 배터리가 바닥 났을 것 같다. 왜냐면 이날 하루동안 자전거만 30km를 탔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일반 자전거를 타고 다닌 덕분에 배터리 방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계획했던 모든 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나선 이유. 바로 온천에 가기 위해서다. 히토요시는 온천이 매우 유명하다. 규슈 88탕 순례를 위해선 꼭 들려야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고장의 특성을 살려 지자체에서 2달동안 "유메구리 온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여행 기간과 겹쳐 상품 타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첫 순례지는 바로 야마에 온천 호타루! 야마에는 마을 이름이고, 호타루는 우리 말로 반딧불이라는 뜻이니 야마에 마을의 반딧불이 온천이다. 실제로 초여름에 노천탕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숙소에서 호타루까지는 자전거로 4.5km.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도 1.4km 떨어져있는데다 걸어갈만한 거리도 아니라 자전거가 유일한 수단이었다. 다행히 완만한 오르막이었고, 직선 국도로 쭉 따라 달리면 온천이 나오기 때문에 갈만했다. 시골에선 무조건 포장된 대로변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더 빠른 길이 있어도 비포장 도로이거나 자칫 길을 헤맬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맵만 믿었다가 홋카이도에서 호되기 당한 기억이 있어 도로 뷰를 보고 달릴 길을 정해놓았다. 달리면서 보니 가장 짧았던 논과 밭 사이 길은 공사 때문에 통제하고 있었다. 길을 알아봐 두길 정말 잘했다! 안개가 자욱한 논과 밭을 따라 달리는데 정말 요괴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 나츠메를 잡아먹으려는 요괴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직선 도로를 쭉 따라 달리니... 25분만에 온천 표지판이 보였다. 온천이라는 글자와 증기를 보니 여기가 내가 오고자했던 반딧불이 온천임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수도에서 김이 강렬하게 피어오르고 있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오른쪽 사진의 수로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이 보이는가? 뜨거운 증기만으로 이곳의 온천물이 얼마나 좋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호타루는 지하 1000m 아래에서 올라오는 원천수를 이용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어디에 주차할지 고민하다 자판기 옆 구석에 세워두기로 했다. 빨간 자전거와 빨간 자판기가 참 잘 어울린다.
히토요시는 밤이 유명해서 밤 디저트를 파는 곳을 꽤 볼 수 있다. 이곳에선 밤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지금 보니 밤 아이스크림... 맛있겠네... 하나 먹어볼 걸, 뒤늦게 후회가 된다. 허나 어쩌겠나. 이미 기회는 떠났거늘. 기회를 잡으려면 다시 오는 수밖에! 다시 올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다!
문으로 들어오면 왼쪽에 카운터, 오른쪽에 당일온천 자판기가 있다. 자판기 옆에는 신발 놓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여기에 신발을 두고, 온천권을 구입해서 카운터에 드리면 된다. 가격은 550엔(대인)이다.
나츠메 우인장 유메구리 온천 종이를 받고(사진의 테이블에 있다), 온천권을 드리니 스탬프를 찍어 주셨다. 시에서 지정한 7개의 온천 중 3곳 이상을 방문하면 냥코센세 반다나(두건)를 받을 수 있다. 이 두건은 나츠메 우인장 애니메이션 15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것으로 팬이라면 탐날 수밖에 없는 굿즈다! 7곳의 온천 스탬프를 모두 모으면 종이에 있는 히노끼 온천 바구니를 받을 수 있다. 이것도 15주년 기념 한정품이다! 7개의 온천 위치를 모두 조사해 두었지만 3일 동안 7개를 다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차량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도 있어서 두건을 목표로 유메구리 투어를 다니기로 했다.
일본은 온돌 난방을 하지 않아서 이런 목조 건물은 정말 바닥이 찬데, 이곳은 온천물 덕분에 1층 홀의 바닥이 매우 따뜻했다. 온천있는 곳으로 가는 복도는 차가웠지만...
내부 촬영이 어려워 홈페이지 사진으로 대체한다. 대욕장 물이 미끈미끈하니 정말 좋았다! 여긴 계절마다 오고 싶다... 호타루 온천은 밤에 더욱 특별한데, 봄에는 라이트업 벚꽃을, 여름엔 반딧불이를, 겨울엔 만천의 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위 사진은 보행온천탕(홈페이지 사진)으로 야마에 온천 호타루의 특별한 탕이다. 남탕, 여탕 하루씩 번갈아 운영하는데 내가 방문한 날은 원래 여탕에 보행욕이 있는 날이었으나 어떤 사정인지 금일 갑자기 남탕 전용으로 바뀌었다. 보행욕을 기대하고 왔는데... 아쉽지만 나중에 다시 오라는 뜻인갑다~하고 다른 온천을 더 열심히 즐기기로 했다.
부욕탕과 마이너스 이온 온천이 정말 좋았다! 단골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그외엔 온천에 숙박하는 분들 같았다. 나 같은 외국인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온천을 마치니 갑자기 손님이 엄청 많이 들어왔다. 11시부터 손님이 엄청 늘더라. 만약 당일치기 온천을 할 예정이라면 아침 8~10시 사이를 추천한다! 호타루 온천은 식당도 운영하고 있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온천 후에 점심을 먹고 가도 좋다. 다음엔 식당도 이용해보려 한다.
온천을 끝내고 나오니 화창하게 해가 들고 있었다. 흐림 예보가 있어서 날씨 기대는 안 했는데 역시 이번 여행도 날씨의 여신님이 도와주셨나보다. 혼자있을 때, 특히 자전거 타는 날에는 날씨가 맑은 날이 대부분이다.
별거 아닌데 저 햇살과 그림자가 왜이리 마음에 들던지. 아~ 조금만 더 있다 가고 싶다!!!
다음에 꼭 다시 오리! 기다려라 밤 아이스크림!
아까와 같은 곳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다. 화창한 날씨가 사진 찍기 좋고,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른 아침의 안개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히토요시에서 안개와 맑은 날씨를 모두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낡은 자전거라 브레이크를 걸 때마다 요란한 쇳소리가 났는데, 그만 일광욕 중인 고양이 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시골의 조용하고 여유 있는 이 분위기가, 자전거를 타며 보는 이 길이 참 좋았다. 오롯이 나를 위해서, 나만의 시간을 위해서... 북해도 여행처럼 기차, 버스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페달을 밟고 싶으면 나아가는 이 여행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인데도 그저 즐거웠다. 이곳에 일주일동안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온천에서 사용한 수건을 방 빨래대에 널었다. 손님이 나간 다른 방의 문이 모두 열려있길래 곧 청소를 하러 오실 것 같아 자체적으로 방 환기를 하고 쓰레기는 거실에 있는 봉지에 분리수거했다. 방에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주인 분이 오셔서 온천권을 2장 주셨다. 2장이나 주신 이유를 여쭈니 하나는 오늘, 하나는 내일 쓰라고 하셨다. 숙박일만큼 온천권을 챙겨주시나 보다. 2장 모두 사용하고 싶었으나 다닐 온천도 많고, 혼자 다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남은 1장은 한국으로 가져왔다. 온천권에 사용 기한이 따로 쓰여 있지 않아서 다음에 히토요시에 갈 때 사용하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본격적으로 히토요시 시내를 돌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우에무라 우나기야. 히토요시에서 가장 유명한 장어집인데 구글 리뷰가 무려 1800개가 넘는다. 인구 3만의 시골 마을, 주변에 도시가 없는데도 이 정도 명성에 웨이팅이면 현지인에게 맛집이라는 뜻이다. 이날은 식사를 위해 들린 건 아니고 이 시간이면 줄이 얼마나 긴지 확인하려고 미리 들렀다.
낮 12시쯤인데 바깥에 웨이팅이 3팀 정도. 평일엔 기다릴만한 수준인 것 같다. 참고로 이 집의 영업시간은 오후 1시 30분까지다.
우나기야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다이키치(大吉). 원래는 오늘 오후 4~5시에 들릴 예정이었는데 굿즈 구경하다 보면 1시간은 걸릴 것 같아 일찍 들렀다. 가게 영업시간이었지만 열려있지 않았다. 어쩌지 당황하다 안내문을 보니 전화하면 문을 열어주신다고 쓰여 있었다. 나중에 사장님께 듣기론 가게 문을 항상 열고 있으면 진열된 상품의 관리 등에 어려움이 있어서 새로운 상품이 들어올 때와 손님이 전화를 했을 때 가게 문을 연다고 하셨다.
너무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유심을 쓰고 있어서 도저히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영업시간 종료인 오후 5시까지 시간이 꽤 남아있기에 오후에 재도전을 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우울해할 틈은 없다! 다음 일정을 위해 바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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