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호텔 1층에서 투숙객에서 빌려주는 무료 자전거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자전거 렌탈을 알아볼지 노면전차 1일권을 쓸지 고민이 많았는데 대여 서비스를 알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자전거를 빌릴 수 있냐고 로비에 물으니 자전거 키를 주셨다. 따로 꺼내주시진 않으니 알아서 꺼내야 한다. 객실 키는 로비에 맡겨야 한다. 기본 4시간 대여지만 오후 4시까지 돌아오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셨다. 하코다테의 관광지는 대부분 노면전차로 갈 수 있지만 전차역에서 가깝지 않은 장소에 가야 한다면 자전거만큼 좋은 선택지는 없다. 홋카이도의 도로는 울퉁불퉁한 곳이 많지만 하코다테는 나름(?) 괜찮은 편이고, 하코다테 야마 부근이 아니면 대부분 평지라 자전거 타기에 좋다.
자전거로 4분만 달리면 하코다테역. 정말 가깝다.
카이센동 먹을 수 있는 가게를 전날 찾아보니 모두 수산 시장 근처에 있었다. 원래 가려했던 가게는 우니의 물기가 많은 편이라 다른 가게에 가기로 했다. 적당히 괜찮아보이는 식당을 찾았다. 해산물 돈부리 전문점 '타비지'.
이 집의 대표메뉴는 오징어가 통채로 올라간 카이센동이라고 한다. 나는 우니, 이쿠라(연어알), 카니(게)가 들어간 미니 카이센동을 골랐다.
메뉴가 정말 많다. 다음 여행엔 한자를 읽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지.
우니, 연어알, 게가 들어간 미니 카이센동. 가격은 1540엔. 생각한 것보다 훨씬 그릇 크기가 작았다. 미소 시루가 함께 나왔다.
그릇이 작지만 밥까지 먹으니 가벼운 아침 식사로 딱 맞았다. 우니, 연어알, 게 모두 맛있었지만 가장 맛있었던 건 연어알. 이쿠라의 신선함, 적당한 짭조름함이 밥과 찰떡궁합이다. 우니 역시 비린 맛 하나 없이 부드럽고 산뜻하다. 해조류가 들어간 미소 시루도 정말 맛있다. 왜 하코다테에 오면 카이센동을 먹으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신선한 해산물을 많이 먹어서 평범한 맛으로는 큰 감흥을 못 느끼는데 하코다테는 식재료의 신선함만으로 압도하는 맛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홋카이도 사람들도 하코다테에 오면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하코다테도 고기 요리가 있고, 징기즈칸 가게가 많이 있지만 '삿포로 아래에서 굳이 고기를?'이라는 느낌이라고. 더 맛있고 신선한 식재료가 있는데 어류를 두고 육류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거겠지.
식사를 마치고 수산 시장을 둘러본다는 걸 갈매기 구경을 하느라 까먹었다.
하코다테 역에서 피로 회복제와 음료를 샀다. 규슈 여행때 마셨던 '우콘노 치카라'. 나는 이 피로회복제가 가장 잘 맞더라. 레몬워터는 그냥 그랬다.
자전거를 타고 히지카타 토시조 최후의 땅으로.
와카마츠 료쿠치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안에 히지카타 토시조 최후의 땅이 있다.
1869년 6월 20일, 신정부의 총공격에 적지에 뛰어들은 히지카타 토시조는 잇폰기 관문에서 총격을 맞고 숨을 거뒀다. 그가 사망한 잇폰기 관문과 가까운 와카마츠 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지금도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공원엔 나뿐이었지만 기념비 앞을 수북이 채운 꽃들과 종이학이, 그가 죽은 지 150년이 지났는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린다. 호리카와초에 아주 맛있는 타르트집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관광지에서 동 떨어져 애매한 위치였는데 이 집을 일정에 넣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케이크 전문점 '레몬 노 하나'. 타르트, 케이크, 구움과자를 판다. 이 집의 인기 메뉴는 '레몬 타르트'. 개점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인 리뷰가 많이 없는 걸 보면 아직 관광객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집인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게 위치가 워낙 애매하다. 고료카쿠와 하코다테야마의 딱 중간인 데다 하코다테 역에서 걸어서 23분. 주변에 묶어서 갈만한 관광지도 없다.
다양한 제과류를 구워봤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있는 디저트는 바로 타르트. 타르트의 맛을 안 이후로 타르트 마니아가 되었다. 레몬 디저트도 매우 좋아한다. 구글 리뷰에서 레몬 타르트 맛집이 있다는 걸 보고 얼마나 궁금했는지. 레몬 타르트라니! 게다가 11시에 오픈해서 1시간 안에 레몬 타르트가 품절될때도 많다고?! 안 먹어보고는 못 배겼다.
11시 35분에 도착하니 웨이팅이 4팀 있었다. 오픈 시간부터 줄을 서는 집이라더니 정말이었다. 홀이 따로 없어 포장만 취급하기 때문에 순환율은 빠르다. 한 번에 3팀씩 들어갈 수 있고, 한 팀이 계산하는 동안 두 팀은 케이크와 타르트를 고르는 식이다. 다행히 레몬타르트는 넉넉히 남아있었다.
원래는 레몬 타르트만 살 생각이었는데... 다른 타르트도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게 아닌가... 특히 2개밖에 남지 않은 노란 타르트가 너무 신경쓰였다. 파인애플 같은데 파인애플 타르트는 본 적이 없어서 '저건 뭐지? 파인애플 맞나? 레몬보다 더 많이 팔리다니. 엄청 맛있나봐.' 하다가 내 차례가 와 버렸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결국 레몬타르트와 파인애플 타르트로 낙점! 타르트 2개에 972엔. 한국이었으면 13000원은 나왔을텐데 가격이 정말 착하다.
타르트가 차가울 때 얼른 먹어야 한다! 하코다테역 주변 광장이 넓었던 게 기억이 나서 일단 항구 쪽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끝내주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타카하시야 라멘. 구글 지도에서 찾아놨던 집이었다. 현지인 맛집이란 분위기가 물씬 났다. 다음에 하코다테를 오면 이 집을 가봐야겠다.
항구 공원에 도착했다. 시원한 항구를 생각하고 왔건만 흐린데다 자외선이 워낙 강해 습하고 뜨거웠다. 다른 장소를 찾아볼까하다가 상자 안의 얼음이 녹을 것 같아 여기서 먹기로 했다.
대표메뉴인 레몬타르트 먼저 한 입! 레몬의 신맛이 거의 나지 않고, 레이어는 촉촉하다. 타르트지는 얇고, 빵시트와 레몬층 사이에는 레몬 생크림이 있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마지막 한 입까지 너무 행복한 맛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자인 파인애플 타르트. 반신반의하면서 한 입을 베어물었다. 와... 미쳤다. 이건 타르트인가? 파인애플인가? 분명 파인애플 타르트지만 타르트지와 크림은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 파인애플은 신맛과 떫은맛 하나 없이 은은하게 단맛을 뽐낸다. 파일애플만으로 충분히 황홀한데 흰 크림과 아몬드 크림, 타르트지가 파인애플을 완벽하게 보조한다... 오픈한 지 40분 만에 왜 2개밖에 남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간다면, 아니 가면(무조건 갈 거다...) 레몬과 파인애플은 또 먹을 테다.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한 자리에서 타르트를 2개나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두 개 다 너무 맛있어서 막힘없이 들어갔다. 제발 평생 영업해 주세요...
타르트 맛에 정신이 팔려 바로 앞에 있는 세이칸선 해상 박물관에 가는 걸 잊었다. (아니, 무슨 맛있는 걸 먹기만 하면 잊어버려...) 다음여행에 들를 장소를 남겨뒀다고 생각하자.
아무튼 타르트를 먹고 해안을 쭉 따라 달리니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에 도착했다. 주차장 한편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아카렌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하코다테 아카렌가 창고는 1887년에 지어졌다. 무역의 영업 창고로 쓰였으나 지금은 상업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BAY 하코다테, 하코다테 히스토리 플라자, 가네모리요부쓰칸, 가네모리홀.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뉘며 내부는 기념품 가게와 카페, 드럭스토어 등의 상업시설이다.
7월 22일부터 9월 10일까지 마루이 이마이 백화점(하코다테점) 7층에서 골든 카무이 특별전이 열린다고 한다. 도쿄, 교토에서도 열렸던 특별전이다. 실제로 참고한 사료와 유물을 만화의 컷과 함께 전시한다. 특별전 책도 팔고 있는 듯하다. 일정이 겹치는 골카팬이라면 가보시길.
애니메이션 굿즈가 많아서 구경하다 보니 1시간 반이 훅 갔다. 가격대도 다양하고, 천 엔 이하 굿즈도 많다. 난 여기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구매했다. 신치토세 공항에 웬만한 기념품은 다 팔고 있으니 시간이 없는 분은 구경만 하고 공항에서 쇼핑하시는 걸 추천한다. 애니메이션 덕후는... 시간이 남는 분이 아니라면 자세히 구경하지 말고 주변만 쓱 보시길. 아니면 나처럼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리고 말 거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구름이 제법 걷혔다.
이제 하코다테의 주요 관광 스팟인 하코다테야마 주변 옛 건물과 하치만자카를 보러 간다. 시간이 제법 지체됐으니 부지런히 둘러보아야 했지만 급하지 않게, 볼 수 있는 만큼 보자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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