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마코엔에서 호쿠토로 9분이면 신하코다테호쿠토역에 도착한다.
사진 너머에 하야부사 신칸센이 보인다. 꼭 타보고 싶은 신칸센중 하나다.
신하코다테호쿠토역은 혼슈의 아오모리에서 세이칸 터널을 지나 홋카이도로 넘어온 신칸센의 종점이다. 2016년 3월 26일 영업을 시작한 홋카이도 신칸센은 현재 하코다테까지만 이어져있으며 삿포로 구간은 2030년 예정이다. 홋카이도 신칸센은 항상 계획이 미루어졌기 때문에 정말 2030년에 개통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개통하면 관광과 업무 수요를 잡는 매력적인 노선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다시 17분을 열심히 달린다.
하코다테 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이 단순해서 초보 여행객도 헤매지 않을 것 같다.
ようこそ, 函館へ!
하코다테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여유가 있었다. 역 내부 음식점을 구경하고 이틀 뒤에 탈 아사히카와행 지정석 표를 발권했다. 아사히카와까지는 직통이 없고 삿포로를 경유해야 하므로 2장의 티켓이 필요하다. 하코다테에서 삿포로까지 3시간 40분이 걸리기 때문에 삿포로에서 식사를 하고 아사히카와로 가도 되고, 나처럼 최소한의 환승시간만 확보해 바로 아사히카와행 기차를 타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아사히카와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환승 플랫폼도 바로 옆에 있어 매우 편하다.
하코다테 역의 심플한 외관. 더 잘 찍고 싶었지만 빨리 호텔에 가고 싶어서... 날려 찍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여행은 지난 북규슈 여행에 비해 사진 찍기에 정성을 절반밖에 들이지 않았다. 멋진 사진을 남기면 나중에 두고두고 볼 사진이 많아 좋지만, 사진에 너무 많은 체력을 소비하면 여행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번엔 구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의 여행을 함께한 고프로도 열흘 중 이틀밖에 쓰지 않았다. 여행 경험이 많거나 여러 지역을 다니면 자연스레 여유가 생길 테고, 그때는 폰카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기엔 너무 젊고 욕심도 많다.
하코다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요한 도시였다. 강한 바다 내음과 항구는 작년의 나가사키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나가사키만큼의 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코다테에서 이틀을 머물 호텔, '호텔 하코다테 로열'에 도착했다.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이고, 가장 가까운 노면 전차역이 도보 5분 거리, 오모리 해안은 도보 6분 거리다.
한 층에 객실이 60개가 넘는데 미로 같은 구조라 스태프 분이 도와주셨다. 일찍 체크인을 해서 그런가 바다가 보이는 방으로 배정을 받았다. 일찍 일어날 수만 있다면 방에서 일출도 볼 수 있다.(하지만 2박 모두 피로 탓에 일출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고료카쿠에 가기 위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쓰카제초 역에서 노면전차를 탔다. 1일 노면전차 패스가 600엔이라 3번 이상 타면 일일이 요금을 내는 것보다 패스를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다. 나는 이날 2번을 탈지 3번을 탈지 모르겠어서 패스는 사지 않았다.
노면전차가 있는 도시는 3번째라 어렵지 않게 전차를 탔다. 처음은 구마모토였고, 두 번째는 나가사키, 세 번째가 하코다테다.
열심히 걷다 보니 혼자 우뚝 선 고료카쿠 타워를 발견했다.
바로 앞에는 럭키삐에로 매장.
고료카쿠 주변엔 아지사이라멘 본점, 럭키삐에로 고료가쿠코엔마에점, 롯카테이 등 갈만한 가게가 많다. 바로 앞에는 하코다테 미술관과 하코다테 베이양자료관도 있다. 하코다테시 중앙 도서관도 가깝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난 이 주변에서 하루종일 놀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게 되면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을 일정에 더 많이 넣고 싶다.
현금, 카드, IC카드, 전자 화폐, QR 코드 결제 모두 가능하다. 성인 기준 1000엔. 클룩이나 아고다같은 사이트에서 전날 미리 예매하면 200~300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단, 할인티켓은 환불이 불가능하다. 체력과 날씨를 보고 다음 날 일정을 세우는 타입이라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현장 구입하자.
입장 시 펀치를 찍어주시는데 별모양이라 귀엽다. 고료카쿠는 벚꽃이 만개하는 시즌에 가장 인기가 많다. 하지만 매년 달라지는 벚꽃 개화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렵고, 비행기 표를 예약한다 해도 벚꽃이 덜 폈거나 비가 오면 원하는 풍경을 볼 수 없기에... 난 속 편하게 여름에 왔다.
입장료 1000엔을 내면서 고료가쿠 타워에 오른 이유. 바로 이 성형(별 모양) 요새를 보기 위해서다. 완전한 오각형을 이루는 별 성곽은 세계에도 몇 없다. 제각기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성형 요새라 해도 전혀 다르다. 특히 동양에서는 흔치 않은 양식이라 한 번쯤은 꼭 보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만화 '골든 카무이'의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히 쓰진 않겠다. 하지만 하코다테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이라면 만화를 처음 보아도 하코다테가 만화의 어느 시점에 등장할지 충분히 예상하실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삿포로가 홋카이도의 명실상부 제1의 도시지만 150년 전에는 하코다테와 오타루가 가장 번영한 도시였다. 골든 카무이의 주무대가 오타루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골든 카무이의 팬이라면 고료가쿠는 빼놓을 수 없는 성지순례지다.
홋카이도의 역사와 아이누의 문화를 재밌게 알 수 있는 골든 카무이. 시간이 된다면 꼭 보시길! 독자의 주연령층이 20대부터 시작하는 신기한 만화인 데다(주간 소년 점프의 만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신기하다) 남녀 성비가 1:1다. 이런 만화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일본에 들어오고, 이듬해 일본은 총 12개 조로 구성된 미일화친조약(가나가와조약)을 체결한다. 3달 후 현재의 시즈오카현 이즈 반도에서 세칙을 포함한 시모다 조약을 체결, 하코다테와 시모다를 개항하게 된다.
고료카쿠는 7년의 시간을 들여 1864년에 완성된 중앙 정부의 관사다. 별 모양 성곽은 16세기 유럽에서 사용된 양식으로 방어와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당시 하코다테는 오타루와 함께 홋카이도 주요 도시였기 때문에 고료카쿠는 단순한 관사가 아니라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 요충지이도 했다.
하지만 고료카쿠의 완공으로부터 4년이 지난 1868년, 일본 역사를 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보신전쟁(무진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에도 막부와 도막파(막부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파로 존황양이를 내세움)가 개국과 쇄국을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하코다테 전쟁 역시 보신전쟁 중 하나다.
구 막부군 일부는 에조(홋카이도의 옛 이름)로 건너와 신정부군(메이지 막부)을 몰아내고 고료가쿠를 점령하였다. 구 막부군 해군 부총재인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신선조의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가 이끄는 구 막부군은 계속하여 신정부에 저항, 몇 차례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하지만 1969년 5월, 하코다테 야마의 뒤쪽 절벽을 타고 나타난 신정부의 기습 공격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사망, 일주일 후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항복하면서 하코다테 전쟁은 종결되었다.
고료카쿠 중앙의 건물은 하급 재판소로 사용되다가 하코다테 전쟁을 겪고 1871년에 헐려 사라졌다. 하지만 1985년에 복원을 위해 발굴을 시작하여 조사와 분석을 거듭한 끝에, 2010년 행정관청 복원이 완료되었다.
전망 2층에 히지카타 토시조(블론즈 좌상) 동상이 있다. '귀신 부장'으로 유명한 히지카타 토시조는 향년 34세로 생을 마감했다. 골든 카무이의 히지카타 토시조는 할아버지인데, 그럼 왜 나이가 다른가? 죽은 줄 알았던 귀신 부장이 사실은 살아서 아바시리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설정 때문이다. 놋페라보(달걀귀신)가 숨긴 금을 찾아 에조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 골든 카무이 속 히지카타 토시조의 목적이다. 실제로 1869년 구 막부군이 하코다테에서 에조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5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남서쪽에 보이는 산이 바로 '하코다테야마'다. 일본 3대 야경 하면 나가사키의 이나사야마, 고베의 마야야마, 하코다테의 하코다테야마다. 신 3대 야경은 나가사키의 이나사야마, 삿포로의 모와이야마, 고베의 마야야마다. 슬프게도 하코다테는 삿포로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하코다테의 야경이 특별한 이유를 뽑으라면 독특한 지형이다. 1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하코다테 야마는 원래 바다에 홀로 있는 섬이었다. 하지만 점점 섬과 반도 사이에 모래톱이 쌓이며 육계도(톰볼로)가 되었고, 모래톱 위에 시가지가 세워지면서 지금의 지형이 되었다.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5000년 전부터. 하코다테 박물관에 가면 조몬 유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혼슈(일본 본토)에서 사람이 넘어와 살기 시작한 건 14세기 무렵. 그전에는 아이누 민족이 살고 있었다. 17세기에 사할린과 쿠릴 열도에 있는 러시아인이 남하하여 아이누, 와인, 러시아인이 세력을 다투게 되었다.
하코다테의 개항 이후 일본 도시공원의 시초인 '하코다테 공원'이 세워지고 일본에서는 두 번째로 수도(水道)가 개설된 도시가 되었다. 외국인 거류지와 교회와 은행, 상점 등이 생기며 하코다테 산 주변은 점점 발전했다. 1908년에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이칸 연락선이 개통되었으며 1920년에는 북양 어업으로 점점 성황 했다. 1933년에는 인구가 20만 명을 넘어 일본에서 9번째로 큰 대도시가 되었다. 바다의 관문으로써 하코다테의 앞날은 영원히 밝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4차례의 불길은 강한 바닷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하코다테의 시내를 먹어치웠다. 1907년에는 1천 명의 사상자가, 1934년에는 2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화재 이후 도시의 도로계획을 수정하여 방화대를 배치했지만 상처는 컸다. 설상가상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엔 미국의 공습을 받으며 세이칸 연락선이 격침되었다. 하코다테가 아픔을 겪는 동안 삿포로가 점점 부흥하며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로 떠올랐다. 1965년에는 아사히카와가 제2의 도시 타이틀마저 가져갔다.
현재는 어업과 관광업이 주산업으로 관광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현재 인구는 25만 명이며 계속 감소 중이다. 2045년 예상 인구는 10만 명이다.
*육계도 : 사주 등에 의하여 육지와 연결된 섬
*사주 : 파도나 조류의 작용으로 강이나 해안의 수면 위에 둑 모양으로 이루어진 모래나 자갈의 퇴적 지형
전망 2층을 열심히 구경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2층에 있는 '우에키 소에쓰 갤러리'는 시간상 패스했다. 대신 1층의 아트리움을 둘러봤다. 식물원을 연상시키는 편안한 공간이다.
이제 고료가쿠 정원으로 들어가 보자.
1600그루의 벚꽃나무가 성곽의 주변을 따라 심어져 있다. 성곽 내부에는 벚꽃 나무 말고 다른 나무도 있다.
2010년에 재건된 행정관청. 치안 판사 집무실로 쓰였다. 내부 견학이 가능하며 성인 기준 요금 500엔이다.
이 우물을 보기 위해 공원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골든 카무이에 나오는 우물이다. 이 우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만화를 끝까지 보신 분이라면 알 거다. 여행이 한 달 남았을 시점에 골든 카무이를 완독 했는데 여행 일정에 하코다테가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원래 고료카쿠는 하코다테에 도착해서 갈지 말지 정하려고 했는데 카무이에 나오는 걸 보고 하코다테 도착하는 날 일정으로 바로 넣었다.
고료카쿠 구경은 여기까지. 이제 배만 채우면 된다.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이번 편은 JR 홋카이도와 하코다테의 지역사에 대한 글이라 재밌게 보셨을지 모르겠다. 최대한 덜 지루하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다녔는지만 쓰면 글쓰기도 쉽고 편하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와 지역에 대해 공부하고 나면 다음 일본 여행이 훨씬 재밌어진다. 왔던 지역을 다시 오면 당연히 보이는 게 늘고, 처음 가는 지역을 가도 배경지식이 있으면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멀리 돌아가는 길이 힘들어 보여도 가장 단단한 길이다. 글쓰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그렇다.
최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진척이 없어서 많이 답답했는데 글을 쓰며 공부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나아진다. 글쓰기와 해야 하는 일을 병행하느라 1일 1글쓰기가 쉽지 않지만 최대한 미루지 않고 열심히 써서 8월 안에 시리즈를 마치도록 노력하겠다. 이번 편을 재밌게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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