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여행 이야기/9박 10일 홋카이도 뚜벅이 여행(2023)

오누마 코엔, 누마노야 당고와 야마가와 소프트크림

by 조각찾기 2023. 7. 23.
반응형

세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여파로 원래 계획과 달리 8시 대신 10시 2분 버스를 타기로 했다.

 

오누마 국정공원을 느긋히 구경하려면 8시 버스를 타는 게 맞았다. 여행에서 시간은 금이니까.

하지만 피로회복제를 마신 것 치고는 몸상태가 좋지 못했다. 간밤에 발과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압박스타킹을 하고 잤는데도 다리의 근육통은 여전했다. 아직 여행이 일주일이나 남았기 때문에 이르지만 셋째 날을 쉬엄쉬엄 다니는 날로 정했다.

 

 구름이 적은 날엔 도야호수의 나카지마 왼편에 자리한 거대한 요테이산을 볼 수 있다. 어제는 전혀 산이 보이지 않았는데 셋째 날에는 요테이산이 보였던 모양이다.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버스 시간이 촉박해 급히 가느라 호수 근처를 들리지 못했는데... 요테이 산을 볼 수 있는지 사전조사를 안 한 내 탓이다. 정말 도야에서는 하지 못하고 가는 것투성이다. 다음에 홋카이도를 올 때는 렌터카로 시코쓰 토야 국립공원을 돌아봐야겠다. 뚜벅이 여행은 운전으로 인한 피로 없이 거리를 직접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홋카이도처럼 대자연이 멋진 지역을 여행할 땐 여행 계획을 촘촘하게 짜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천천히 걸어 토야코 온센 버스 터미널로.

 

터미널에 코인 락커와 외화환전 기계가 있다. 필요한 분은 참고하시길.

시간이 남는 분은 터미널 건물이 지역사 박물관이니 관람해보자. 입장료가 무료다.

 

도난 버스를 타면 도야역 바로 앞에 내릴 수 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2분 지연된 버스. 올라올 때보다 이용객이 많았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이동했다. 한번 가본 길이라 그런지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정석을 예약하려고 했지만 매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유석칸 앞에 줄을 섰다. 다행히 같은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정석칸 줄에 서있어 자유석 자리가 있겠구나 확신했다. 오누마 코엔까지 기차로 1시간 28분이 걸리니 자리가 없으면 곤란하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어제처럼 태양빛이 뜨겁지도 않고, 딱 좋다. 홋카이도 서쪽은 주요 도시 간의 거리가 멀어 열차 탑승 시간이 길기 때문에 앉는 방향이 중요하다. 오션뷰도 좋지만 뜨거운 햇빛을 피하고 싶다면 산 뷰 자리에 앉는 게 좋다.

 신치토세~하코다테를 기차로 왕복한다면 한 번은 바다뷰, 한 번은 산뷰에 앉는 걸 추천한다. 바다뷰는 무로란시의 하쿠쵸 대교, 모리마치의 고마가타케산이 멋지다. 산뷰는... 삿포로로 갈 때 자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고마가다케 산

바다가 사라졌다. '아, 이제 곧 내리겠구나.' 하는 순간 내 앞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서른 번도 넘게 본 구글 지도, 저건 분명 고마가타케 산이 분명했다. 요테이산, 다이세츠산 만큼 유명하지 않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멋졌다. 날이 좋은 날 보면 얼마나 멋질지!

 20분 전까지만 해도 창밖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고마가타케 산을 지나니 날씨가 흐려졌다. 

 

 오누마 코엔역에 도착했다. 작지만 깔끔한 역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하코다테 본선의 기차역 중에선 잘 정비된 편이다. 바로 전후역인 아카이가와역과 오누마역은 정말 작다. 작은 주택하나 세워놓고 "여기가 역입니다." 하는 느낌이랄까.

 홋카이도는 인구가 많은 주요 도시나 유명 관광지가 있는 지역 외의 마을의 기차역은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가는 기차역은 삿포로역, 오타루역, 미나미오타루역, 노보리베츠역, 하코다테역, 아사히카와역, 비에이역, 후라노역 정도. 홋카이도를 여러 번 방문한 분은 왓카나이역, 네무로역, 오비히로역, 아바시리역, 구시로역까지 가시곤 한다. 관광객은 사람이 북적이는 커다란 역이 익숙하지만 사실 그런 역은 아주 일부고 작은 역이 훨씬 많다.

 

 삿포로 역에서 편도로 8360엔이라니... 하코다테에서 출발하면 9440엔이다. 일본의 교통비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다. 홋카이도는 우리나라(한반도 남쪽) 면적의 80%나 되는 큰 섬이라 철도 관리가 어렵다. 게다가 홋카이도는 12개월 중 5개월이 겨울이다. 제설 작업으로 쓰는 예산이 만만치 않다. 하코다테에서 삿포로까지의 선로는 바다 옆에 위치해 있어 더더욱 관리가 어렵다.

 이용객이 많으면 그나마 나은데 이 넓은 땅에 500만 명밖에 살지 않는다. 게다가 200만은 삿포로에 몰려 있고, 제2의 도시인 아사히카와의 인구가 30만. 주요 도시를 잇는 노선은 존속하고 있지만 국철 시절까지 포함하면 약 1600km가 폐선되었으니 경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JR 홋카이도는 여전히 국고의 보조를 받고 있다. JR 규슈, JR 서일본, JR 도카이도, JR 동일본이 완전히 사철로 독립한 것과 대비된다. JR 시코쿠도 아직 독립하지 못했는데 여기도 인구 감소가 심각하고, 매년 태풍의 직격타를 맞아 홋카이도의 제설보다 보수 예산이 많이 든다고 한다.

 하코다테역부터 삿포로역까지 기차로 310km에 9만 4천 원.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고 KTX로 6만 원. 호쿠토가 왕복 12회밖에 운영하지 않고, 철도의 관리가 어려우며, 이용객이 적음을 감안하면 왜 비싸게 기차요금을 받는지 알 수 있다.

 

 1985년에 국정공원으로 지정된 '오누마 국정공원'은 오누마, 고누마, 준사이누마, 고마가타케산을 포함한다. 이중 오누마는 가장 큰 늪지로 둘레가 24km에 달하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자전거로 1시간이 걸린다.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는 길과, 도보로만 출입가능한 길이 구분되어 있다. 18개의 다리를 이용해 섬을 건너 다닐 수 있으니 다리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보자.

 

오누마 코엔역.

 

오누마 코엔역 바로 앞에 있는 누마노야(늪의 집). 1905년에 창업한 당고집이다. 오누마 코엔의 필수 코스. 현지인들도 줄을 서 당고를 사간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

 

통창으로 기차역이 보인다. 줄이 없다면 기차 출발 5분 전에 사도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다.

 

스기모토 사이치의 군복을 딴 주머니를 샀는데 안에는 박하사탕이 들어있었다. 550엔짜리 박하사탕...

역시 있구나. 골든 카무이의 미소(오소마)!

 

맛은 팥과 참깨, 사이즈는 소와 대가 있다. 소는 430엔, 대는 710엔. 참깨는 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이곳에서만 판매한다고 한다. 구글 리뷰와 블로그에 팥이 더 맛있다는 평가가 많아서 나는 팥으로 구매했다. 

 

도시락처럼 칸이 나누어져 있는 이유는 오누마호와 고누마호, 2개의 늪을 본땄기 때문이다. 작은 칸(간장 당고)은 고누마호이고, 큰 칸(팥이나 참깨)은 오누마호인가 보다.

 

매장 바로 앞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포장지를 뜯으니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퍼진다. 바로 꼬치에 당고를 꿰었다. 쫀득하고 말랑한 떡의 식감이 일품이다. 떡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2판도 먹을 수 있을 듯하다. 시간이 많았다면 참깨 맛도 먹었을 텐데 오누마 국정공원에서 허락된 시간이 2시간뿐이라 이번엔 팥맛만 먹기로 했다. 간장과 팥 모두 맛있었지만 간장은 너무 달아서 팥이 훨씬 맛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당고가 먹고 싶다... 누마노야... 언젠가 다시 가리라...

 

야마가와목장 우유플랜트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빌렸다. 누마노야 바로 옆에 있다.

 

빌린 자전거의 번호를 기억해야 한다. 1시간 대여에 500엔. 종일 대여는 1000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캐리어를 맡기고 일반 자전거를 1시간 대여했다. 12시 50분에 빌리니 14시까지 돌아오면 된다고 하셨다. 종이 지도에 빨간 펜으로 표시하며 호수 주변의 어디를 자전거로 달려도 되는지 알려주셨다. 친절하셔서 좋았지만 자전거 성능이 너무 별로여서... 다시 이용할 것 같진 않다. 이번 여행에서 4일이나 자전거를 대여했는데 여기서 빌린 자전거가 가장 별로였다. 일단 차체의 소재가 나쁘고, 브레이크도 오래되어 세게 눌러야 했으며, 바퀴도 시원치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5분이 지나고 깨달았다. 홋카이도의 도로는 인도든 차도든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이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도로를 정비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시골로 갈수록 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눈 때문에 매년 뒤틀리는 아스팔트의 상태가 자전거 타이어를 통해 곧바로 느껴졌다. 토야코에서 8시 버스를 타면 자전거를 타고 전망대도 가고, 멀리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식사까지 하려고 했었는데, 일찍 왔어도 도로가 나빠 오랫동안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 구글 지도가 엉뚱한 길로 알려준 바람에 직진해서 좌회전만 하면 되는 매끈한 차도를 두고 삥삥 돌아왔다. 일단 도착하긴 했다만...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다리는 여전히 아팠고, 땀은 줄줄 났다. 우유가 맛있지 않으면 정말 속상할 것 같았다.

 

야마가와목장 우유플랜트

 자판기로 구매해서 카운터에 가져다 드리면 소프트크림을 주신다. 나는 바닐라 맛을 구매했다. 바닐라, 초코믹스(바닐라와 초코), 초코, 커피, 커피믹스(바닐라와 커피), 말차, 말차믹스(바닐라와 말차)가 있다. 난 바닐라 소프트크림을 골랐다.

 

흰 우유도 1병 구매했다. 카운터에 따로 말씀드리면 꺼내주신다. 커피우유와 요구르트도 맛있을 것 같다.

 

(좌) 이미 한입 베어물은 아이스크림. (우) 야마가와목장 우유

자리를 잡기도 전에, 바닐라 소프트크림을 바로 한입 베어 물었다. 와... 미쳤다. 진짜 미쳤다. 내가 이거 먹으려고 여기 왔구나...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소프트크림 중에 제일 맛있었다. 홋카이도 유제품이 맛있다더니, 이번 여행의 첫 아이스크림이지만 여기를 넘는 곳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시간이 30분만 더 있었더라면 다른 맛으로 하나 더 먹는 건데...(눈물)

 우유는 오누마 코엔역에 돌아가서 마셨는데 소프트크림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맛있는 우유임은 분명하다. 병도 예쁘니 기념으로 가져가도 좋을 것 같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재방문할 테다. 그때는 차 타고 오고 싶다...

 

부지런히 돌아가는 길. 반대편에서 먼저 가라고 길을 내어주신 이름모를 두분께 감사드린다.
폰이 멈추기 전에 몇장 사진을 찍어서 다행이었다... 돌아와서 보니 고마가다케 산이 찍혔었다. 얼마나 여유가 없었으면 산이 보이는 것도 몰랐을까? 요테이 산도 그렇고 이번 여행은 산과 인연이 없나보다...(눈물)

 반납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백조전망각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내 휴대폰이 갑자기 멈췄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힘들었나 보다. 렌즈 부분이 뜨끈뜨끈했다. 휴대폰이 계속 안되면 어쩌지, 당황스러웠다. 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돌아가서 반납하는 쪽으로 정했다.

 

노부부가 운영하신다. 자전거 성능은 나쁘지만 나처럼 1시간 대여하지 말고 종일 대여해서 천천히 탄다면 괜찮을 것 같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짐을 찾았다. 

 

오누마는 말 그대로 '코(호수)'가 아니라 '누마(슾지)'라 물이 청록색이다. 맑은 물을 생각하고 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여름도 괜찮지만 오누마 코엔은 가을과 겨울을 추천한다. 가을의 맑은 날, 3km 떨어진 히구레야마에 올라가 단풍 숲으로 둘러싸인 늪을 보면 '아, 이게 오누마 코엔의 진풍경이구나!' 하지 않을까. 겨울에는 오누마를 찾은 백조들을 볼 수 있다. 하얀 옷을 입은 고마가타케 산은 덤이다.

 사진만 봐선 날씨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제법 하늘이 흐렸다. 18개의 다리를 다 걸으면서 다니고 싶진 않아 오누마 구경은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역시 늪보다는 호수, 호수보다는 강이다. 나는 강을 가장 좋아한다.

 

14시 17분 호쿠토 열차를 타러 역으로 돌아왔다. 호쿠토 열차로는 28분, 하코다테 본선까지는 56분이 걸린다. 2배나 차이가 난다. 호쿠토는 1~2시간에 1대꼴이라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는데도 오누마 코엔에서 더 있지 않고 이동한 이유다. 

 

자유석 칸에 탑승했다.

 

오누마 코엔에서 하코다테로 갈 때는 진행 방향의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자. 코누마를 볼 수 있다.

 이날 남은 일정은 고료카쿠. 하코다테에 도착하면 14시 50분이니 체크인을 하고 1시간을 쉬어도 영업 종료 전에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급하게 다닐 필요가 없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가고 싶던 하코다테에 가는데 몸이 힘드니 설렘은 고사하고 빨리 가서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침대에 몸을 뉘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설렘 없는 여행이 계속되면 어떡하지? 아프지 않고 재밌게 다닐 수 있을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