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살인적으로 뜨거워서 휴대폰이 더위를 먹었다. 구글 맵에 카메라까지 돌리려니 힘들어하는 녀석.
로터리 횡단보도를 건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타이어가 가로지르는 순간,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자전거로 밟았을까 봐 심장이 쿵 떨어졌는데 다행히 무사했다... 이때부터 휴대폰은 가방 뒷주머니 안쪽 깊숙이 넣어줬다.
토키와 공원에 들렀다. 규모는 작지만 인공 호수와 녹음의 조화가 좋았던 곳. 부지 안에 홋카이도립 아사히카와미술관이 있다. 마음이 가는 특별 전시회가 없어서 미술관은 다음에 들리기로.
날도 뜨거운데 이시카리강 풍경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세웠다. 공원 부지에 미술관뿐만 아니라 수영장도 딸려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물이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바쁘다 바빠! 구글 맵이 알려준 이동 시간보다 훨씬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다. 자전거로도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오누마 공원에서도 느낀 거지만 홋카이도의 도로는 정말 난도가 높다. 그나마 아사히카와는 부지를 넓게 써서 자전거로 다니기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도로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사실상 '인도=자전거 도로'다. 세종에서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내게 도심의 자전거 운전은 익숙하다! 아사히카와의 울퉁불퉁한 길에 적응했겠다, 잘 온 것 까진 좋은데 홋카이도 교육대학 아사히카와 캠퍼스만 보이지 박물관처럼 생긴 건물이 안 보인다... 잘 온 게 맞나?
횡단보도를 건너 좀 더 달리니 주차장이 있어 들어왔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개방하지 않는 것 같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메인 같았다. 외국에서 이렇게 작은 규모의 박물관은 처음 가본다.
3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국어 안내책자가 있는지 여쭤봤는데 외국어는 영어밖에 없단다. 책자를 보니 페이지 수도 제법 되고, 설명이 잘 나와 있어서 입장료를 낸 가치가 있었다. 시라오이에서 주는 자료와 같은지 책자 뒤에 시라오이 주소가 있었다. 보통 아사히카와보다는 노보리베츠를 더 많이 가니 시라오이에서 자료를 얻는 것도 좋겠다. 자료의 내용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양이 많아서 생략하겠다. 나중에 아이누 문화에 대해 더 공부를 하고 나면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영어 책자외에 전시 설명은 일본어가 대부분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전시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용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골든 카무이도 큰 도움이 됐다.
아이누의 마키리. 산에서 나무와 일용할 양식을 얻는 아이누족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리는 말 그대로 아이누어로 '칼'을 뜻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 마키리를 가지고 있는데, 남성은 사랑하는 여성에게 손수 깎아 만든 마키리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여성이 마키리를 받아주면 마음을 받아주겠다는 뜻이다. 골든 카무이에서도 아시리파의 아버지가 아시리파의 어머니에게 마키리를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아시리파에게도 마키리를 만들어주었고, 작중 중요한 물건으로 작용한다.
2층에 있는 곰 조각들. 홋카이도의 강에는 연어가 살고 있는데 강의 연어를 잡아먹고 있는 곰의 조각이 많았다. 이렇게 많으니 조금 무서울 정도다. 사진에는 일부만 나온 것이다.
'카와무라 키네토 아이누 기념관'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누 박물관이다. 2023년에 107년을 맞았다. '카와무라'라는 이름의 아이누 사람이 세운 기념관으로 지금은 일반 사단법인 카와무라에서 운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을 참고.
외부에 코탄이 하나 있는데 여기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 구경할 수 있다. 기념관에서 하는 체험에서 사용했는지 불 피운 냄새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가는 길에 책가방을 맨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다. 한 아이는 잠자리채를 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 봐도 귀엽다. 더울 텐데 옹기종이 모여 걸어가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북진기념관에 도착했다.
무료 관람이니 아사히카와에서 시간이 남으면 들러보자. 역사적으로 민감한 분들도 있겠지만 난 이런 장소를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골든 카무이에 나오는 아사히카와 제7사단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방문했다.
기념관에 들어가면 직원 두 분(자위대인가?)이 수요 조사를 한다. 어떻게 찾아왔는지, 어디에서 찾아왔는지를 다이얼을 돌려 숫자로 나타내는데 이런 것마저 컨셉에 충실하다니 일본 스럽다.(변태스러운 면이 있다. 나쁜 쪽은 아니다.) 해외에서 온 관람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외국인이 들어오자 당황한 두 사람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 : "니혼고모 다이죠부데스.")
기념관은 2층이 전시 공간인데 이게 보기보다 꽤 넓다. 꼼꼼히 보려면 1시간은 잡아야 한다. 전시 주요 내용은 러일 전쟁에 관한 것으로 전쟁 당시 전투가 있던 곳, 사단의 본부가 있던 곳, 당시 풍경이 어땠는지가 주를 이루었고, 군대의 핵심 인물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다.
전전에 육군 제 7사단이 있었기 때문에 아사히카와는 군도시로 성장, 4개의 강(이시카리강, 주베쓰강, 비에이강, 우슈베쓰강)이 모여있어 교통의 요지로 개발하면서 점차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인구 약 35만으로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지금은 육상자위대 소속인 제2사단이 아사히카와를 본부로 두고 있다. 이날 기념관에서 자위대 단체를 마주쳤는데 실제로 자위대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기념관 1층에는 관련 도서가 빼곡하게 들어찬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옆에는 군복 입기 체험이 가능한지 군복이 걸려 있었고, 위에는 골든 카무이 작가의 그림과 싸인이 있었다. 아사히카와 기념품과 삿포로 클래식, 골드 카무이 굿즈도 팔고 있다. 카무이 굿즈가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이라 '여기서 사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도 없겠구나...!'라고 직감했다. 모든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라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웠다. 결국 10분을 고민하다 아크릴로 결정! 직원 분과 골든 카무이와 한국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전시해놓은 미니 아크릴. 히지카타 토시조 일행만 제외하고 3개를 사 왔다. 4개 다 사고 싶었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북진기념관 바로 건너편에 있는 홋카이도 호국신사에 들렀다. 자전거 반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신사 내에 들어가진 않았다. 제법 큰 신사고, 건물도 멋지다. 토리이도 손 씻는 곳도 반질반질한 것이 얼마나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느껴졌다.
아까 사진을 찍었던 아사히바시로 왔다. 아사히카와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이 다리를 보고 싶어서였다. 구글 지도로 둘러보다가 커다란 초록색 다리를 발견했는데 내가 일본의 교량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다리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사히카와는 크고 작은 강이 130개 이상 흐르고 있어 다리의 개수만 75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사히카와는 '강과 다리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수많은 다리 중에서도 아사히바시는 아사히카와의 상징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시카리강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는 아사히카와를 잇는 다리로 중요한 교통로이기도 하다. 1932년(쇼와 7년)에 완공되어 쇼와 31년에는 시내 전철이 이 다리를 달렸다고 한다. 지금은 왕복 4차선 차도로 사용되고 있다.
석양의 잔조에 빛나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남쪽에서 촬영하면 이시카리강과 웨딩홀이 잘 보이고, 북쪽에서 촬영하면 다리 뒤에 아사히카와의 명산인 다이세츠산을 함께 화면에 담을 수 있다. (내가 간 날은 뭉게구름이 가득해 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리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냥 평범한 다리이건만 이 다리는 꼭 다시 들리고 싶다. 다음에는 일몰 시간에 맞춰서 와봐야겠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가는 길. 아직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아사히카와 시내에 가볼 만한 카페를 몇 군데 봐두었는데 모두 영업 종료라 가지 못했다. 아쉽지만 자전거만 반납하고 바로 체크인을 하러 가기로 했다.
이틀 동안 묵을 아사히카와 플라자 호텔. 잠만 자기에는 충분하다. 아사히카와는 관광도시가 아니라서 삿포로, 하코다테처럼 호텔이 많지 않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성수기, 비성수기 가리지 않고 호텔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다. 물론 비성수기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긴 하지만... 어디든 호텔 시설에 비해서 비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여름이라 게스트하우스도 도심의 3성급 호텔 수준 가격이었다.
결국 예산을 아끼기 위해 아사히카와 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인 이 호텔을 잡았는데 관광객은 거의 없고 아사히카와로 출장온 샐러리맨들이 하루이틀 묵는 곳이었다. 간이 호텔 느낌이랄까. 조금 더 투자해서 역 앞의 호텔을 잡을걸 후회도 됐지만 이것도 경험이니까 괜찮다. 덕분에 호텔 보는 눈이 더 생겼다!
여기 프런트 직원이 사장님인 것 같았는데 일본어로 설명해 주신다. 일본어를 못하면 좀 힘들 것 같다. 아사히카와에서 숙박할 예정이라면 역 앞에 있는 루트 인이나 JR 인처럼 브랜드 호텔을 추천한다.
도보 1분 거리에 징기즈칸 다이코쿠야가 있다. 저녁 7시에 오니 대기줄이 어찌나 긴지 맞은편 대기 건물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웨이팅에 시간을 쓰고 싶진 않으니 일단 다른 가게로.
아사히카와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리는 지유켄. 고독한 미식가에 나온 가게인데 관광객은 고로 세트를 많이 시킨다. 마침 딱 한 테이블 남아있어 웨이팅 없이 앉을 수 있었다.
고로 세트를 주문하고 10분 정도 기다리는데 갑자기 뭔가 잊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현금을 놓고 온 것이다! 지유켄은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인데 현금을 놓고 오다니... 동전을 다 털어봤지만 금액이 모자랐다.
서둘러 구글 맵을 키고 가장 가까운 세븐일레븐을 찾았다. 다행히 도보 2분 거리에 있었다.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아서 직원 분께 "짐을 두고 3분만 잠깐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주방에서는 곧 음식이 나온다고... 마음이 급해져서 카드를 들고 얼른 돈을 뽑아왔다. 여행하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근처에 세븐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시골이었으면 정말 난처할 뻔했다.
빨리 돌아온 덕분에 따끈따끈, 먹음직스러운 생선 튀김과 게살 고로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에는 맛있는 한입으로 돌려줘야 하는 법! 생선을 먼저 베어 물었다. 음~ 담백한 살과 겉의 바삭한 튀김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튀김이 오버쿡됐는지 입천장에 닿는 감촉이 까슬까슬했다. 맛있지만 튀김이 아쉽다. 두 번째 타자는 게살 고로케! 역시 한입! 음!!!! 이거다!!! 이게 진짜였군!!! 단품을 시켰다면 마지막에 물렸을 텐데 2개라 딱 좋구나!! 아주 좋아, 좋은 녀석들이었어.
으아~ 배가 부른데 다이코쿠야를 바로 가기엔 좀 그렇고... 소화시킬 겸 돌아다닐까? 역 옆에 붙어 있는 이온 몰은 좋지. 들어가 보자.
그렇다. 덕후인 내가 일본에 와서 애니메이트를 빠뜨릴 리가 없다. 아사히카와 애니메이트는 규모가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아서 가볍게 보기 딱 좋았다.
한국에서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최애의 아이. 역시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다. 매장 앞에 최애의 아이 단행본이 쫙 깔려 있었다. 앨범 매장에는 요아소비의 아이돌 앨범이 따로 나와 있었다. 아이돌도 좋지만 たぶん, 夜を駆ける처럼 보컬의 매력이 드러나는 곡이야말로 요아소비의 진수다. 내 추천은 2021년에 나온 앨범「THE BOOK」이다.
가장 오른쪽은 유희왕 굿즈를 찍은 것이다. 지금도 유희왕 시리즈가 나오고 있지만 역시 근본은 듀얼 몬스터즈 아니겠는가. 아템과 카이바가 딱 하나씩 남아있었는데 가격도 괜찮아서 엄청 고민했다. 골든 카무이로 출혈이 심했기에 참았지만... 북진기념관에 가지 않았다면 100% 샀을 것 같다. 여중생 둘이 지나가다가 유기오 모른다는 대화를 들었는데 세대 차이가 느껴져서 슬펐다...(아니, 그래봤자 나 20대 초반인데... 슬프다.)
마트에 괜찮은 도시락이 있을까 싶어 들려봤지만 사고 싶은 게 없어 치즈 구경만 실컷 했다. 유제품이 다양하다니 정말 부럽다. 홋카이도는 기회가 된다면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
다이코쿠야로 가는 길에 버스킹 공연을 하길래 잠시 구경했다. 옛날 노래를 부르는지 옹기종기 모인 할아버지들이 아이처럼 춤추며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9시에 다이코쿠야에 도착했다. 그 많던 웨이팅 줄이 사라지고 3팀 정도만 남아있었다. 나를 포함해 여기 있는 팀이 마지막 손님인 것 같다고 모두 가게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연예인 싸인이 어찌나 많던지. 내가 알아본 건 이시하라 사토미 상 정도지만 말이다.
양고기는 처음인지라 무난한 세트 메뉴를 시켰다. 고기도 고기지만 야채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아, 그리고 이 집은 무조건 나마비루를 시켜야 한다. 홋카이도라 삿포로 클래식을 기대하겠지만 다이코쿠야의 생맥은 기린맥주다. 근데 이 기린맥주가 정말 맛있다.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 내가 물을 마신건지 맥주를 마신건지 모르겠다. 그저 내 식도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맥 한 잔 더 시켜야 하나 5번은 고민했지만 배불러서 참았다. 다음에 가면 무조건 2잔은 마셔야지.
처음에 직원 분이 한 점을 구워주시는데 두 번째부터는 셀프로 구워 먹으면 된다. 내 입맛에 가장 맞는 부위는 어깨였다. 얇고 부드러워서 식감이 좋고, 기름지지 않아 좋았다. 지방이 있는 부위는 질겨서 먹기 힘들었다. 고기만 봤을 땐 재방문 100%는 아니나 맥주를 마시러 올 거냐고 묻는다면 100% 재방문 의사 있음! 양고기를 잘 아는 분이라면 세트보다는 단품 메뉴를 추천한다!
늦은 시간에 간 덕분에 쾌적한 내부 사진을 편히 찍을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건 상관없고 맥주 아껴 마시느라 혼났다.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간다. 내일은 비에이, 후라노로 떠난다. 날씨도 좋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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