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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이야기/9박 10일 홋카이도 뚜벅이 여행(2023)

여름의 후라노, 라벤더 물결과 노롯코 열차

by 조각찾기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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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째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비에이, 후라노 지역으로 떠난다!
여름의 비에이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라벤더. 라벤더 절정은 7월 중순~말로 절정까지는 아직 2주 이르지만 올해는 기온이 높은 탓에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이르다고 한다. 풍성한 라벤더 밭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함께, 오늘도 출발!
 

아사히카와 역에 도착했다. 후라노선은 로컬라인이라 레일패스를 이용해 바로 탑승했다.
 

후라노선은 전좌석 자유석이다.

후라노선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사히카와가 기점이라 매우 좋구만!
 작년에 규슈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건데 나는 철덕이 맞다. 특급 열차도 좋지만 로컬선도 매우 좋아한다. 일반 열차 특유의 그것은 특급열차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라인마다 사용하는 기차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에 타는 열차는 어느 계(ㅇㅇ계) 열차일까~', '어떻게 생긴 녀석일까~', '무슨 색일까?' 하며 두근두근 기다리는 맛이 있다.
 후라노선 열차는 낡고 오래됐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매우 깔끔하고 매끈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실내도 어찌나 깔끔한지, 깜짝 놀랐다. 이렇게 깔끔한 로컬선도 있구나... 내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기타 비에이역까지는 평지가 쭈욱 이어졌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큰 감흥이 없었다. 음, 좋다. 노란색과 연두색, 참 좋네! 정도. 밖에서 골프 같은 구기종목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우연히 보았는데 이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비에이를 지나자 점점 풍경이 예뻐졌다. 비에이 역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비에이 강의 색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청의 호수 색깔이 딱 저렇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되면 자전거로 비바우시역부터 비에이역까지 자전거로 돌 계획이었는데, 과연 가능할지... 전날 밤부터 끙끙 고민하다가 다이마루는 정기 휴일(수요일), 준페이는 웨이팅을 해야 할 것 같아 비에이보단 후라노 쪽을 먼저 가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팜토미타. 유명한 관광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비에이, 후라노는 유명하지 않은 장소가 몇 개 없다시피 해 계획을 짜고 나니 뻔하디 뻔한 코스가 되었다. 그래도 자유 여행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이 여유로움, 한 장소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누리는 자유는 언제나 기분 좋다.
 팜토미타가 아니어도 비에이초에는 라벤더 밭이 많아 사람이 적은 곳을 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팜토미타에 간 건 '라벤더바타케'역에서 여름 한정 '노롯코 열차'를 타고 싶어서였다. 라벤더 맛 소프트콘이 궁금하기도 했고.
 

나카후라노역 도착! 으아, 햇볕이 정말 뜨겁다. 이런 날씨를 예상은 했지만 방심하면 팔이 까맣게 타버릴 것 같다. 만전을 기해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길 잘했다.
 

아스팔트 인도 옆에도 피어있는 라벤더. 후라노에 왔음이 실감 난다.
 

왼쪽의 하늘색 집이 너무 예뻐서 찰칵.
(좌) 지나가는 길에 후라노 라벤더 공원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타는(?) 곤돌라 리프트. (우) 이것은... 민들레인가?

열심히 걸어가니 팜토미타 표지판이 보인다. 다리가 있는 갈림길에 가니 차가 제법 지나다니는 것이 관광지가 맞구나 싶었다.
나카후라노 역에서 팜토미타까지는 걸어서 20~25분.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가깝지도 않다. 왕복으로 따지면 거의 50분이라 기차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 노롯코열차! 팜토미타에서 라벤더바타케역은 걸어서 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더워서 더욱 맛있었던 아이스크림

그냥 주차장이 보여서 들어왔는데 팜토미타가 아니라 토미타 멜론 하우스였다. 이왕 왔으니 멜론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 먹었다. 가격은 450엔. 생멜론을 먹고 싶었지만 멜론 알레르기가 있어서... 남은 나흘동안 고생할까 봐 패스. 유바리 멜론은 식도가 붓는 것을 감수하고 한 번 먹어보고 싶지만 말이다. 생멜론은 못 먹었지만 멜론 소프트콘도 충분히 맛있어서 만족했다! 하코다테에서 못 이루었던 멜론 아이스크림의 꿈을 이루었다...!
 

사람들 따라가면 되겠지 하고 따라가니 입구 같은 곳이 나왔다. 여기가 맞나 보다. 오, 보라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라벤더 밭 도착!
 

다이세츠산도 보인다! 다이세츠산을 보고 가긴 하는구나!

아직 절정이 아니라서 높은 지대의 라벤더는 절반만 피어 있었다. 나무 너머에도 큰 밭이 있었는데 그쪽의 라벤더는 거의 피지 않은 것 같았다. 밭에 들어서면 향기 폭격을 맞을 줄 알았건만 라벤더 향도 많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라벤더에 코를 대고 맡으려고 하면 벌친구들이 열심히 날아다녀서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 어쩔 수 없다. 작전상 후퇴다!
 

밭 옆에 있는 자작나무가 멋졌다.

 혼자 오신 분께 요청드려서 다이세츠 산, 라벤더 배경으로 사진도 건졌다. 나도 혼신의 힘을 다해 찍어드렸다. 내려가다가 만난 연두색 애벌레. 나뭇잎인 줄 알고 밟을 뻔했는데 어째 이거 움직이는 것 같아 피했다. 역시 애벌레가 맞았다. 도시에 살다 보니 이런 애벌레를 마주친 건 참 오랜만이다. 어릴 때는 매일 봤는데 말이다.
 

썸네일 용도로 찍은 사진.

정상에 올라왔을 땐 그늘이 진 데다 역광인 시간이라 사진이 예쁘게 안 나왔는데 갑자기 해가 들기 시작했다. 라벤더도 좋지만 뒤의 수림과 하늘까지 3개의 층이 얼마나 예쁘던지. 라벤더가 만개하면 얼마나 더 예쁠까?
 

FRESH FLOWERS CAN NOT BE TAKEN OVERSEAS!

상점가로 내려가 라벤더 맛 아이스크림을 샀다. 한 손에 라벤더 묶음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옆 가게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 사고 싶었지만 한 손엔 아이스크림, 한 손에는 휴대폰. 남는 손이 없다. 며칠 지나면 시들 텐데 버려질 꽃이 가엽기도 하고. 대신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밭으로 달려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화장품 맛이라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나는 극호였다. 또 먹고 싶다...
 

내가 들어온 곳은 입구가 아니라 후문이었다. 정문은 상점가 뒤에 있었다. 팜토미타의 사람들은 다 여기에 몰려 있었구만. 후문으로 들어오길 잘했다. 뚜벅이로 오신다면 멜론하우스를 먼저 들렸다가 팜토미타 후문(?)으로 들어와서 정문으로 나가시는 걸 추천한다.
 처음이라 와봤지만 너무 관광지스러워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절정시기에 왔다면 감상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언덕에서 다이세츠산을 볼 수 있었던 점, 멜론 소프트콘과 라벤더 소프트콘을 연달아 먹을 수 있는 점이 정말 좋았다! 노롯코 열차 시간도 여유롭게 구경하고 탈 수 있는 시간이라 딱이었다.
 
· 9:38 아사히카와에서 후라노선 탑승, 출발
· 10:46 나카후라노역 도착, 팜토미타(+멜론하우스)로
· 12:16 라벤더바타케역에서 비에이행 노롯코열차 탑승
 

노롯코 열차를 타러 가는 길. 한 가족을 우연히 만났다. 어머니, 아이 둘, 할머니 일행이었는데 여자 아이는 어머니가 포대기로 안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세네 살쯤 되어 보였다. 내가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자 뒤에서 계속 기다려주셨다(감사합니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나 : "아이가 귀여워요!"
어머니 : "감사합니다."
나 : "오늘 날씨가 정말 덥네요."
어머니 : "그러게요. 오늘 정말 뜨거워요."
~~~~~
어머니 : "독학이요? 일본어 잘하시네요!"
나 : "감사합니다(웃음). 대학생인데 여름 방학이라 홋카이도에 여행 왔어요. 열흘 간 여행해요."
어머니 : "열흘이나! 비에이는 아사히카와에 숙소 잡으셨나요?"
나 : "네, 맞아요. 아사히카와에서 2박이요."
어머니 : "저희도 오늘 팜토미타에 관광하러 왔답니다. 팜토미타 전에 몇 군데 더 다녀왔어요."
나 : "라벤더 정말 예쁘더라고요. 오늘 정말 뜨겁긴 하지만요(웃음)."
 

함께 노롯코 열차를 기다렸다. 아는 사람만 아는 노롯코 열차! 자유석 줄은 꼬마 손님들로 인산인해!

나 : "(여자 아이를 바라보며) 몇 살인가요?"
어머니 : "큰 아이는 3살, (앞으로 안은 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1살이에요."
나 : "1살!"
어머니 : "(웃음) 오늘이 인생 첫 기차랍니다. 렛샤 데뷰!"
나 : "렛샤 데뷰!!"
 

라벤더 바타케역에서 보이는 팜 토미타. 멀리서 보니 규모가 제법 크다. 언덕의 밭은 40%만 핀 모습. 이날 날짜는 7월 5일이다.

나 : "아사히카와 분이신가요?"
어머니 : "네, 아사히카와 사람이에요."
나 : "아사히카와에서 맛있는 가게는 어디인가요?"
어머니 : "라멘 한정으로요?"
나 : "네!"
어머니 : "음... 맛있는 가게라... 음... 텐킨, 산토카?"
나 : "산토카는 어제 다녀왔어요."
어머니 : "음... 그러면 미즈노! 생강 라멘인데 맛있어요. 아! 생강 잘 드시는 편인가요?"
나 : "그다지 잘 먹는 편은 아닙니다."
어머니 : "그럼 안 돼요! 생강 별로면 여긴 안 돼요."
나 : "그렇군요. 그래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노롯코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는 딱 2가지. 홋카이도 레일패스와 재팬 레일 패스다.

노롯코 열차가 도착했다. 승강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열차를 찍으려는 사람들로 엄청났다. 지정석 줄에 선 사람들 때문에 높이로는 승부가 안 될 것 같아 아이들처럼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이 열차를 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전조사를 했던가! 알록달록 꾸며진 견인 차량을 보니 진짜 노롯코 열차를 탄다는 게 실감 났다.
 노롯코열차는 3량 열차로 2량은 지정석, 1량은 자유석으로 운영한다. 운영 횟수는 4~5회로 기억한다. 비에이, 아사히카와 방향으로 갈 때는 디젤 기관차가 앞에서 견인하니 아사히카와 방향 열차를 추천한다. 나도 견인 차량에 관해서는 몰랐는데 어떻게 얻어걸렸다. 간이역에서 탄다는 특별함 때문에 더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지정석 예약을 하지 않아 자유석 차량에 탔지만 사실 노롯코 열차의 아이덴티티는 이 자유석 열차다. 자유석 풍경 사진에 반해서 이 열차를 타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했다. 창을 바라보는 의자에 앉아 바람을 맞는데 일찍 내리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리려 했던 카미후라노역. 내릴까 말까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여기서 내리면 미슐랭 1 스타 소바집에 가서 소바를 먹을 수 있는데...  그냥 통과하고 비바우시에 내리면 역 주변에 식당이 없는데 어쩌지? 하지만 노롯코 열차를 조금만 더 타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아쉽지만 카미후라노는 다음에 보자. (데라상의 고향이라 카미후라노 꼭 들리고 싶었는데...! 히노데 공원이랑 고토 스미오 박물관도 찾아놨는데...!)(눈물)
 그러고 보니 비바우시역 바로 옆에 빵집이 하나 있었어. 분명 오픈 시간이 오후 1시. 비바우시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오픈 직전이니 딱 좋아. 비바우시역에서 내려서 빵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자전거 라이딩을 하자. 분명 그곳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을 거야.
 

비바우시까지 얼마남지 않아 일어나 열차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꼬마 친구들, 노롯코 열차의 추억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3살 남자아이도 환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ありがとう!

함께 노롯코열차를 타고 온 아카쨩 가족과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バイバイ!
 

비바우시 역에 내려서 떠나는 노롯코 열차를 담아본다. 언젠가 다시 탈 기회가 있을까? 몇 년 후일지 모르지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ノロッコ列車に乗って本当に良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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