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소에 너무 늦게 들어온 탓일까, 늦잠을 자 버렸다. 그것도 아주 거하게.
북해도 박물관에 9시에 도착해야 하는데 눈 떠보니 9시 반이다.ㅋㅋㅋ OMG... 맙소사...!
서둘러 준비해서 삿포로 역에 도착하니 마침 에베쓰행 JR이 5분 뒤 출발이었다. 덕분에 일정을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
신린 코엔 역에 도착했다. 주택 단지가 많은 외곽 느낌. 너무 붐비지도, 그렇다고 시골도 아닌. 조용한 분위기가 참 좋다.
개찰구를 나와서 찍은 모습. 여기서 구글 맵 검색을 하면 빙 돌아가는 인도를 안내해 주는데, 역 끝에 통로가 있으니 구글 맵을 무시하고 통로를 이용하면 된다. 역 앞에 사람이 없는 이유가 있다.
통로를 지나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자전거가 잔뜩 세워져 있었다.
등교 시간은 한참 지났건만,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여러 명이 보였다. 길이 같아 학생들을 따라 오르막을 올랐다. 완만한 오르막이 쭉 이어지는데 힘든 기색 하나 없다. 학생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힘을 내본다.
중간에 학생들이 학교로 들어가고 혼자 묵묵히 걷는다. 자외선이 강한 날이라 오르막을 걷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 입구 같아 보이는 곳을 발견했는데... 아뿔싸, 입구가 아니었다. 계단을 올라, 여기가 맞나 싶은 좁은 숲길을 걸으니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아스팔도 도로를 조금 더 걸으니 북해도 박물관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날씨가 너무 더워 에어컨이 간절했다.
늦잠 때문에 아침밥을 먹지 못했는데 다행히 박물관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메뉴는 음료와 빵 몇 가지뿐이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소중했다. 직원 분이 너무 친절하셔서 더 좋았다. 북해도에서 보기 힘든 규슈만큼의 친절이었다. 친절히 응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진의 저 요구르트. 진짜 미쳤다. 홋카이도에서 먹은 가공 유제품 중에 가장 맛있었다. 히다카유업, 기억했다!
북해도 박물관과 개척촌을 함께 볼 수 있는 티켓. 성인 1200엔. 대학생이라 학생 할인을 받았다. 문제는 이미 성인 요금으로 결제를 한 탓에 취소하고 대학생 요금으로 재결제를 했는데, 외화 체크카드 취소는 처음인지라 환불까지 몇 주가 소요됨을 몰랐다. 이중 결제가 된 줄 알고 문의하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관람했으면 좋았을 텐데 뭔가 잘못된 줄 알고 전전긍긍하느라 전시가 눈에 들어오질 않더라. 환불까진 3주 소요됐다. 이것 때문에 완전히 일정이 꼬여버렸지만... 그래도 유럽이 아닌 일본에서 먼저 경험해서 다행이지 싶다. 이것도 다 경험이다.
1층은 아이누의 역사, 언어, 문화와 홋카이도의 역사, 경제에 대해 다룬다. 2층은 오디오 가이드 없이 쉽게 볼 수 있는 테마지만 1층은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길 적극 권한다. 여러 언어로 된 설명판이 마련되어 있으나 개괄적인 내용만 있어서 세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오디오 가이드가 필요하다. 꼼꼼히 보려면 1층만 1시간 이상 걸린다.
2층은 홋카이도의 주거와 산업, 동식물 등에 대해 다룬다. 가볍게 둘러봐도 1시간 내로 다 볼 수 있다.
7월 말부터 특별전이 있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조몬 시대 국보 전시전.
오후 2시. 도보 1km 거리의 북해도 개척촌으로 이동한다.
더위를 뚫고 북해도 개척촌에 도착했다. 사진의 건물은 출입구인 구 삿포로역 정차장이다.
작지만 코인락커도 있다. 심지어 코인을 다시 돌려준다.
1번 건물에서 한국어 맵과 설명서를 준다.
왼쪽의 1~17번 건물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주택이 대부분이다.
마침 이날은 개척촌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사생 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돗자리와 텐트,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가 정말 많았다. 오른쪽 캡모자를 쓴 아이의 그림을 봤는데 정말 잘 그렸더라.
왜 이렇게 그림 그리는 아이들이 많은지 의문이었는데 나중에 만난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 인터넷을 보니 2주 전에 사생 대회 수상작이 발표되었더라. 오전엔 화악기 체험, 어망 수선 체험, 염료 체험, 젖소 착유 체험, 짚 세공 체험 등에 참여할 수 있다니 아이가 있는 부모님들이 찾으면 좋을 것 같다.
7번, 구 아리시마 집안의 주택. 골든카무이 만화에 나온 건물이다.
7채의 집을 보고 나니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식사를 하러 왔다. 제대로 된 식사 없이 오후 3시가 다 됐으니... 배가 고플만하다.
골든 카무이에 나왔던 니신 소바를 먹으러 왔는데... 15시에 주문하니 식사류는 마감이라고. 분명 15시까지 주문을 받는다고 되어있는데! 남은 선택지는 간식 메뉴뿐... 그래도 개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감자떡을 주문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감자떡이 나왔다. 근데 웬걸. 진짜 맛있다. 한입 베어 물고 눈이 동그래졌다.ㅋㅋㅋ 니신 소바가 포만감은 있었겠지만... 이게 더 맛있을 것 같은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식당 기념품샵에 골든 카무이 맥주가 있었다. 근데 캔 용량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다...? 스기모토와 오가타를 함께 넣을 순 없었던 거냐? 하지만 난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간식도 먹었으니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들어간 오타루 신문사 건물. 이곳에서 자원봉사자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신문사 건물 안에 일본어로 된 설명지가 있었는데 가져가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내게 일본어 설명은 큰 의미가 없었기에... 읽지 못해서 괜찮다 말하니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기 시작하셨다. 나중에는 따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도 된다고 하셔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여쭤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홋카이도의 주택에 관한 것이었다. 겨울철 건물의 실내 온도가 몇 도인지 여쭈자, 실내는 20~25도지만 바깥 온도가 영하 20도라 실내가 따뜻해도 춥다는 인상이 있다고 한다. 겨울이 추우니 한국의 온돌처럼 바닥 난방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에 대해 설명이 이어졌다.
옛날에 교토가 일본의 수도였던 시절, 모두가 교토를 부러워했고 모두가 교토를 따라 했다. 그래서 추운 도호쿠지역(대표적으로 센다이)의 사람들이 기후에 맞지 않는 교토의 주택을 따라 지었는데, 훗날 도호쿠의 주택이 홋카이도에 전파되면서 기후에 맞지 않는 주택이 자리 잡고, 결국 일본 전국에 있는 집은 교토의 양식을 따르게 되었다고.
한국은 맨션이 없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한국은 아파트가 대다수고 맨션은 많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근데 일본의 맨션에 해당하는 게 한국의 아파트라서... 설명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50년 전에 한국을 3번 가셨다고 하지만 50년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사는 지역(세종)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세종은 생긴 지 10년밖에 안된 도시로 정부청사가 있어 행정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구 40만이라는 점, 한국의 4대 강인 금강을 끼고 있다고 알려드렸다. "금강, 들어본 적 있어."라고 하셨는데 온돌과 한글을 우리말 그대로 말씀하실 때도 놀랐지만 금강을 알고 계신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폐장시간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아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공부가 됐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젊은 사람이 공부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라며 남은 시간 동안 잘 둘러보라고 하셨다.
다행히 2시~3시 사이에 본 건물이 다였는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건물은 더 이상 없었다. 덕분에 빠르게 구경할 수 있었다.
15번, 야마모토 이발소. 오가타... 표정이ㅋㅋㅋ
아오야마가 어업자 주택도 구경하고...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가 생각났던 어촌군 바다와 연못. 정말 아름답다.
가장 신기했던 누에고치 제조소. 골든카무이 공식 순례지는 아니지만 노다 작가가 여기에서 누에고치 신을 만든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농촌군 아래에 있는 낙농축사까지 내려가봤다. 시간이 4시 30분. 폐장시간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산촌군까지 보기엔 애매한 시간.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서둘러 둘러보기로 했다.
산촌군을 무리해서 본 이유. 바로 삿포로 농업학교 기숙사를 보고 싶어서였다. 오르막과 내리막인 숲길을 달려 5분 만에 무도장과 기숙사 건물에 도착했다. 다른 건물은 아쉽지 않은데 이상하게 이 건물은 꼭 보고 싶었다.
구 삿포로 농업학교 기숙사(케이테키료)는 어제 간 홋카이도 대학의 시초인 삿포로 농업학교의 기숙사다. 시계탑 부근에서 지금의 캠퍼스 부지로 이전한 후, 1907년에 현관동과 주방동, 2개의 생활동(36실) 규모로 지어졌다. 개척촌에는 현관동과 2동 12실 만을 복원하였다. 어찌나 깔끔하게 관리가 되고 있던지 놀라울 정도였다. 100년 전 학생들의 생활 모습이 그려졌다. 일본 문학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가지군으로 돌아가는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직원 분이 폐장 20분 전이라며 찾아오셔서 길을 알려주셨다. 돌아오니 폐장까지 15분이 남았지만 더 둘러볼 힘이 없어서(제대로 밥을 못 먹어서) 여기까지만 보고, 입장할 때 봐둔 골든카무이 책을 사기로 했다. (입구 근처에 골든카무이 무대지인 소바 가게가 있는데... 깜박하고 가지 못했다.)
혹시 북해도 개척촌에 올 계획이 있다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할 생각으로 오는 게 좋다. 오전에 입장, 시가지군을 구경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남은 어촌군, 농촌군, 산촌군을 둘러보면 된다. 개척촌을 다 보고 박물관으로 넘어가 천천히 구경하자. 관광이 목적이라면 삿포로 도심에만 머무르길 추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 추천한다.
990엔짜리 골든카무이 책을 구매했다. 언젠가 이 책을 능숙하게 읽을 수 있기를. 그럴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자.
날도 뜨겁고, 배도 고프고, 몸도 힘들어서... 버스를 기다렸다. 마침 10분 뒤에 신삿포로행 버스가 있었다. 동전도 버스 요금만큼 남아있었고.
210엔으로 역까지 편하게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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