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8일. 여행의 시작지,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처음 이틀은 근교로 놀러 가 낮의 후쿠오카를 보지 못했다. 오늘은 낮의 후쿠오카를 돌아보려 한다.
후쿠오카 시내는 너무 많은 분들이 찾는 여행지다. 관광지, 음식점, 쇼핑. 이미 정보가 충분한 장소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아침은 닛신 씨푸드 컵라멘.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방을 나선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규슈 디자이너 학원. 하카타 역에서 도보 5분 거리다. 이 학원은 아다치 학원 그룹이 운영하는 기관으로 진격의 거인의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 센세가 다녔던 학원이다. 이곳에 초대형 거인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외부인은 1층만 들어갈 수 있고, 2층부터는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다. 거인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사진을 찍고 라쿠스이엔으로 걸어가는 길. 멘야 타이슨 앞을 지났다. 하카타의 유명 라멘집들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덜 알려진 라멘집인지 줄이 짧았다. 금방 한국인 사이에서 소문이 날 것 같았지만... (한국인들의 정보력은 무섭다.)
그렇게 라멘 집을 지나 조금 걸으니 라쿠스이엔에 도착했다. 메이지시대에 세워진 하카타 상인의 별장을 개축, 건물 내부에 당시의 다실을 복원한 정원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일본의 정원을 도심에서 느끼기 좋은 곳이다. 일본의 3대 정원을 다녀오신 분이라면 너무 싱겁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일본 여행이 처음인 분, 도심 한가운데에서 정원을 보고 싶은 분에게 딱이다.
입장권을 사러 간다.
입장료는 100엔. 현금만 가능하다. 다실에서 차를 마시고 싶은 분은 차 세트(500엔)를 구매하시면 된다.
정원 입구.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사진 찍기 좋지만 관광객이 많아 풍경 단독샷을 찍기 매우 어렵다. 그리고 관광객은 90% 이상 한국인이었다. 현지인 분들도 계셨으나 대부분 중장년층 1인 또는 부부였다.
풀과 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고, 정원 한가운데에 작은 못이 있다. 규모가 작아서 차를 마시지 않는 분은 3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날이 너무 좋아 잠시 앉아 사진을 찍었다.
냥코센세 인증샷을 찍고 다음 목적지인 스미요시 신사로 향한다.
일본 전역에는 약 2000곳의 스미요시 신사가 있다. 그중 이곳은 3대 스미요시 신사의 하나로 후쿠오카 북서부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신사다. 불교 양식이 아닌 일본 고대 신사 건축법으로 지어져 일본의 국가 중요 문화재로 선정되었다.
정문에서 신사 입구까지 걷는 길이 예쁘다. 이곳으로 들어오시길 추천한다.
스미요시 신사에서 주택길을 걸어 캐널시티로 왔다. 일본에 몇 개 없는 건담베이스 매장이 바로 이곳, 캐널시티에 있다. 퀄리티도 좋고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건담 매니아라면 눈이 돌아가는 곳이다. 건담을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이 보아도 예쁘더라.
후쿠오카 도심에서 돌아다니지 않고 애니메이션 굿즈 쇼핑을 하고 싶다면 캐널시티로. 인형, 피규어, 티셔츠, 갓챠 등 다양한 굿즈를 볼 수 있다. 다만 고쿠라의 아루아루시티에 비하면 마이너 작품을 찾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메이저 작품 위주다. 요즘 대세는 역시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 도쿄 리벤져스, 스파이 패밀리다. 귀멸의 칼날은 인기가 워낙 많아 갓챠 한 줄이 다 귀칼이었다. 재고 소진이 빨라 낮에 정비 타임이 있다. 기계를 사용할 수 있을 때 구매하시길. 갓챠 가격은 기본 300엔부터 가장 비싼 500엔까지. 여담이지만 이번 여행동안 갓챠에만 거의 2천엔을 썼다. 다행히 마지막 갓챠에서 원하는 아이가 한 번에 나와 며칠간 돈 깨진 값을 했다.
원피스 필름 레드의 인기가 뜨겁다. 2022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위. 한국에도 개봉했다. 영화를 보지 않아 스토리는 모르겠지만 일단 노래가 좋다. Ado는 믿고 들을 수 있다.
원피스는 1997년 7월 22일부터 지금까지 주간 소년 점프에서 장편 연재한 만화다. 원피스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도 원피스라는 이름과 루피는 안다. 사실 일본에는 장편 만화가 제법 많다. 주간지가 가장 흔하지만 월간지에 연재하는 만화도 많다. 어떤 연재 형태이던 20년, 30년 긴 세월을 연재한 작가들의 건강 관리 능력과 자기 관리 능력은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난 오다 에이치로 센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만화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한 가지 일을 오랜 세월 계속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지브리의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유명하진 않다. 오히려 유명한 작품 두세개만 보신 경우가 대다수일 거다. 그래서 잠깐 영화 추천 시간을 가질까 한다.
내가 꼽는 지브리 4대장은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이중 '라퓨타'를 보신 분이 유독 적다. 개인적으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훨씬 높게 사는 영화다. 지브리 초기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유를 막 펼칠 무렵의 광기와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이야 지브리가 엄청 큰 회사지만 사실 초기엔 엄청난 경영난과 인력 부족으로 힘든 세월을 겪었다. (미야자키 감독의 완벽 주의 때문에 인력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 '지브리의 천재들'에 나와있다.) 라퓨타는 그 풍파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사실 지브리에는 미야자키 감독 말고 회사를 이끈 감독님이 한 분 더 계신다. 바로 故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다. 다카하타 감독은 루팡 3세와 빨간머리 앤의 감독이기도 하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또한 지브리 작품은 해외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것이 많다. '귀를 기울이면'도 그러하다. 지브리의 양대 산맥 두 감독이 아닌 감독이 만든 작품 중 가장 즐겁게 본 영화다. 우리가 잘 아는 컨트리 로드를 주제가로 사용했다.
캐널시티의 점프샵. 최근 라라포트에 새로운 점프샵 매장이 생겨 후쿠오카 매장이 2개가 됐다. 점프샵 외관을 보면 요즘 어떤 작품이 가장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최근의 만화 세대교체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장기 연재하는 인기 만화가 완결할 때 회사의 손해(수익, 팬 유출)가 크기 때문에 능력 있는 신인 작가를 꾸준히 발굴, 독자에게 새로운 작품을 보이는 전략이다. 3~5년의 단기연재가 늘고 있고, 인기 있는 만화는 휴식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시즌을 연재하기도 한다. 대히트한 귀멸의 칼날 역시 단기연재였다. 귀멸의 칼날의 작품성에 관해선 말이 많지만 '인간은 덧없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강하고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좋은 만화라 생각한다. 대사가 단순하면 어떤가. 그만큼 가독성이 좋지 않나. 그런 작품도 있고 저런 작품도 있는 것이지.
점심식사를 하러 4층의 타카오로 이동했다. 가게 밖의 자판기를 이용하시면 된다. 현금만 가능하다.
튀김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먹고 있으면 앞에 튀김을 가져다 주시기 때문에 매우 편하다. 덴푸라 맛은 준수한 맛이고, 오히려 쯔유와 명란이 더 맛있었다. 튀김은 오징어와 연근이 맛있었다.
명란도 팔고 있다. 먹어보니 후쿠오카가 왜 명란이 유명한지 알겠더라.
쇼핑하고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낮의 캐널시티도 운치 있지만 불이 켜진 저녁이 훨씬 분위기 있다. 쇼핑몰에서 열심히 걸어 다녔으니 앉아서 놀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7박 8일 일정 중 언제 가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마지막 날 가게 되었다.
캐널시티에서 조금 걸어 도착한 곳은 바로 카라오케 빅에코. 일본에서 가장 큰 노래방 체인이다.
이번 여행에서 해보고 싶은 문화 체험이 2가지 있었다. 영화관과 노래방 체험이다. 영화관 체험은 구마모토의 토호시네마에서 했으니 이번엔 노래방을 갈 차례였다. 성대의 체력만큼은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다.
한국의 요금제는 곡과 시간 2가지가 있는 반면, 일본은 시간 요금제만 있다. 요일, 시간대, 신분(학생인지 아닌지)에 따라 요금이 다르게 책정된다. 2인 이상이 한 방에 들어갈 경우, 인원수에 따라 돈을 따로 받기 때문에 한국의 노래방보다 비싸다. 나는 학생할인(대학생도 가능, 실물 학생증 제시)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다. 참고로 빅에코는 음료 한 잔을 필수로 주문해야 한다. 난 음료가격 포함 2시간 요금으로 1045엔이 나왔다.
노래방에 마이크 커버가 비치된 한국과 달리 일본의 마이크 커버는... 무려 비닐이다... 원래 그랬는지 방역용인진 모르겠는데 매우 불편했다. 리모컨은 전자패널이고, 히라가나로 곡명이나 가수명을 검색해 노래를 찾으면 된다. 즉, 히라가나를 알지 못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외국어 번역 기능도 있지만 그건 우리나라 곡을 찾을 때 수월한 거지 일본곡을 부르려면 결국 일본어가 편하다. 예약한 후 화면을 1~2초간 사용할 수 없어 제법 시간이 걸린다.
절차가 많은 나라임은 알았지만 문화 생활에서도 그 절차를 다 밟아야 하는 느낌이라 피곤했다. 2시간 풀로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눈만 빠르게 건조해졌다. 그래도 한국 노래방에 없는 일본곡을 부를 수 있어 참 좋았다. 하지만 역시 노래방은 한국이 최고다! 일본 노래방은 생각보다 곡이 많지 않고, 최신 아니메 곡은 TVA판(1분 30초 분량)만 들어와 있어 곡 전체를 부를 수 없었다.
노래를 열심히 불렀더니 배가 고프다. 하카타 역 지하 식당가로 가서 끌리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텐진호르몬에 갈지 리큐에 갈지 고민하다 마지막 식사는 호화롭게 먹고 싶어 더 비싼 리큐로 왔다. 인터넷에서 추천받아 온 곳이다. 센다이가 우설이 유명한 건 알고 있었지만 리큐가 센다이의 우설 전문점인진 모르고 들어갔다. 나중에 찾아보고 센다이에서 먹을 걸 그랬나 싶었다. 도호쿠 지방에서 규슈까지 진출할 정도면 제법 인기 있는 체인인 것 같다.
규탄 세트(6점)와 나마비루를 주문했다. 이 나마비루는 이번 여행의 첫 나마비루였다. 여행 중반에 컨디션을 조절하느라 술을 자제했는데 어쩌다 보니 생맥주 한 번을 안 마셨더라. 고기는 탱탱했고, 국은 한식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다만 고기, 국, 츠케모노 다 간이 짜서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밥 덕분에 다 먹을 수 있었다. 먹으면서 텐진호르몬에 갈걸 그랬나 했지만 규슈는 다음에 또 방문할 테니 기회가 있겠지. 다음에 센다이에 가면 리큐는 패스해도 되겠다!
떠나기 전 이키나리 당고를 한 번 더 먹고 싶어 편의점을 들렸다. 생각보다 당고 찾기가 쉽지 않아 3곳이나 들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리 구경을 하게 됐다. 하카타역에서 가깝지만 메인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매우 한적하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한 두 명 있는 정도. 많은 사람의 보금자리가 모여있는 대도시건만, 그 사실이 무색할 만큼 고요했다.
숙소에 돌아와 야식으로 미타라시 당고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날은 한국과 가나의 월드컵 경기가 있었다. 짐을 싸는 와중에도 열심히 경기를 봤다.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오후 12시 30분 비행기다. 7박 8일 여행이지만 비행기 시간때문에 공항만 가는 일정이다.
첫 홀로 해외여행. 마지막 밤이 저문다.
다음 여행까지 7개월이 남았지만 괜찮다. 그 7개월 동안 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테니.
다음 여행으론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하코다테, 삿포로, 노보리베쓰, 오타루, 아사히카와, 비에이, 후라노를 모두 들리는 긴 일정이 될 것 같다. 섬의 면적이 넓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규슈보다 더 여유롭게 시간을 잡고 돌아보려 한다.
도호쿠, 주부, 간토, 간사이, 주고쿠, 시코쿠, 오키나와, 이번에 가지 못한 남규슈도 하나씩 가볼 계획이다. 언젠가 다시 북규슈를 방문할 그날이 기대된다. 7일간 수고한 내 몸뚱이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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