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의 두 번째 날, 아침 일찍부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전날밤 이온몰에서 사 온 유부초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창문을 쳐다보는데 제법 안개가 끼었다. 이런 날에 산에 올라가도 되는 건지 걱정을 하고 있던 찰나,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하늘이 조금씩 개어 어느새 히타 역까지 선명하게 잘 보였다.
오늘 일정은 오야마에 있는 오야마댐과 진격의 거인 박물관 본관에 갔다가, 중간에 박물관 별관에 들리는 일정이다. 오야마댐까지는 시내에서 10km 떨어져 있고, 212번 국도는 상당한 오르막길을 자랑한다. 코로나가 풀리고 성지순례를 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오야마 박물관행 시내버스가 새로 생겼지만 버스 시간에 일정이 묶이는 게 싫어서 자전거를 선택했다.
내가 이용한 자전거는 공유자전거 COGICOGI. 12시간 플랜에 2,500엔을 지불했다. 과연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선택한 내 판단이 맞을지는... 천운에 달려있었다. 구글 맵 로드뷰를 정말 많이 찾아보았고, 일본에서 자전거도 많이 타보았지만 처음 가보는 산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오르막이며 인도가 적고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국도는 처음이라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빌린 자전거는 884번. 내 몸에 조금 작아서 아쉬웠지만 자전거 바구니가 큰 점이 마음에 들었고, 안장을 높여도 발로 자전거를 쉽게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도를 타다 보면 옆에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갈 텐데 혹시 모를 상황에 빠르게 멈추기 위해 작은 차체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휠이 큰 자전거는 동력을 더 빠르게 소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이 판단은 위험했다. 큰 자전거 2대는 100% 만충인 반면 작은 자전거 2대는 배터리가 8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만큼 자전거의 배터리를 더욱 우선해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비에이의 전동 자전거 말고는 일본의 전동 자전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비에이 때처럼 배터리 소모가 느릴 줄 알았던 것이다.
우선 잘 아는 시내 길을 따라 어제 노을을 봤던 다리까지 왔다. 다리를 건너 좌회전해 쭉 가야 국도에 진입할 수 있다.
사진의 세븐일레븐이 산으로 들어가는 시작점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세븐일레븐까지도 2km나 달려야 한다. 아무리 내가 여행 중에 자전거를 20~30km씩 타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처음 돌아다니는 지역에, 시골이라는 위험성, 날씨까지 춥고 흐려서 쉬운 일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2km를 달리는 내내 추운 강바람이 나를 지독히 괴롭혔다.
여기부터는 구글 맵의 로드뷰로 사진을 대신한다. 자전거 중에는 안전을 위해 최대한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아서 거리 풍경을 매번 찍을 수 없었다.
사실 이 세븐일레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큰 문제가 있었는데 80%였던 배터리가 10%나 줄었다. 오르막길은 이제야 시작이었고, 지도에 봐둔 농산물 직판장까지는 2.1km를 올라가야 했다.
구글 맵으로는 갈만해보였는데 실제로 가보니 무지막지한 오르막이다.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만... 정말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반 자전거보다는 훨씬 낫지만 생각보다 어시스트가 쉬원찮아서 거의 내 허벅지 힘만으로 오르는 느낌이다. 물론 진짜 일반 자전거였으면 죽음을 경험했을지도... 전동 아닌 자전거로 오려면 로드 바이크정도는 되어야 올만하지 않을까.
고비를 넘기고 잠시 10분정도 쉬어가는데 배터리는 50%밖에 안 남았고, 목적지까지는 5km나 남아있었다. 이때부터는 오늘 어떻게든 배터리를 아껴서 조난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관람하고 내려가는 것만을 목표로 잡았다. 그렇게 진격의 거인 박물관 별관보다 2.4km 위에 있는 '온센 우메히비키'는 자연스레 포기했다... 오야마를 바라보며 노천탕... 하고 싶었는데...
오야마 댐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있는 세븐일레븐까지는 아직 2.8km를 더 올라야 했다. 고작 50%의 자전거로 말이다. 다행히 농산물 직판장을 지난 후에는 완만한 오르막이라 전원을 끄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인도가 뜨문뜨문 끊어져있긴 했지만 있는 구간이 대부분이라 안전하게 달릴 수 있었다.
세븐일레븐에 도착하니 조금 안심이 됐다. 주변엔 버스 정류장도 있었고, 무엇보다 음료와 음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조금 마음을 추스르고 댐까지 갈 전략을 다시 세웠다.
오야마댐의 동상까지는 아직 2.4km를 더 가야했다. 하지만 50%도 안 되는 자전거로 댐까지 전동으로 이동했다간 박물관에 갈 때와 돌아갈 때 쓸 동력이 없을 테니 30%가 되는 순간까지만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먼저 조그만 다리를 하나 건너고,
산길을 열심히 올라갔다. 참고로 화물차가 엄청 많이 다녀서 인도가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 같다. 만약 세븐일레븐에서 내렸다면 40분 잡고 천천히 올라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배터리 30%가 된 순간, 인도 한켠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잘 잠그고 올라갔지만 끈으로 매어둔 게 아니라 걱정이 되긴 했다. 다행히 자전거가 도난되는 일은 없었다.) 이곳에서 동상이 있는 곳까지는 1.6km 걸리니 20분 정도 천천히 올라가면 되겠지.
오르고...
또 오른다. 아래를 바라보면 이정도 경사다. 사진으로 봐도 경사가 제법 있음을 알 수 있다.
갑자기 갈림길이 하나 나왔다. 진격의 거인 표지판을 보니 잘 온 것 같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길을 검색하는데 댐까지 가는 길이 2개가 나왔다. 동상까지 가는 길과 댐까지 가는 길이 다르게 나와서 어떤 길이 맞는지, 어떤 길을 선택해야 안전할지 고민이 됐다. 결국 동상보다는 댐 사무소 쪽 길을 골랐다.
그나저나 여기 경치 끝내주는구만... 이렇게 험난한 산이 있는 동네에서 나고 자랐으니, 월 마리아와 월 로제 사이의 황야에 거대한 숲을 두어야겠다는 설정을 했겠지.
와, 근데 여기도 오르막 빡세다.
아래를 바라보는데 내가 진짜 많이 올라왔구나 싶더라. 눈앞에 저건 구름인가?
거의 다 왔다...
댐 사무소 도착!!! 넓은 주차장이 있는 걸 보니 제대로 도착했구나 싶었다. 놀라운 점은 이 사무소를 찾은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 이곳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이날 나를 구원했고, 내 여행을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과연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궁금하신 분은 다음 편을 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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