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날 아침, 삿포로행 라일락 첫차시간은 5시 18분이지만 특별한 열차를 타기 위해 조금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아바시리에서 출발하는 오호츠크는 5시 57분이 첫차로 아사히카와에 9시 44분에 도착한다. 라일락은 삿포로까지 1시간 10분, 오호츠크는 1시간 30분이 걸리지만 20분의 차이보다 새로운 열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체크아웃을 하고 역으로 걸어간다. 25분 전에 나왔는데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서둘러야 했다.
역 앞에 도착하니 9시 36분. 아사히카와 역은 단순해서 플랫폼까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서두르면 에키벤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에키벤을 골라놓고 결제하려고 보니 현금만 가능했다. 어젯밤에 가방을 정리하다가 깊숙한 곳에 현금을 넣어 놓은 탓에 현금을 바로 찾지 못했다. 점점 기차 시간은 가까워지고... 결국 에키벤을 포기하고 플랫폼으로 뛰었다.
파란색 오호츠크 열차가 도착했다. 오호츠크 특급 열차의 이름은 오호츠크 해에서 따온 것인데 종점인 아바시리 역이 오호츠크해 옆에 있기 때문이다. 키하 183계 열차가 올 줄 알았는데 호쿠토를 닮은 열차가 서 있었다. 2023년 3월 17일까지는 183계로 운영하다가 최근에 키하 283계 열차로 바뀌었다고 한다.
열차가 바뀐 이유는 183계가 틸팅 열차가 아니기 때문. 기차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쓰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선로를 개선하거나, 차량을 개량하는 방법. 하코다테 편에서도 등장했지만 JR 홋카이도는 선로의 관리가 어렵다. 즉, 선로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선택한 것이 차량을 개량하는 방법이었다. 183계가 코너의 감속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자, 틸팅 열차인 283계로 차량을 바꾸었고 소요시간 단축에 큰 공헌을 했다. 283계로 바꾸고 아바시리에서 아사히카와까지는 3시간 40분으로 줄었다.(아바시리~아사히카와는 230km 거리다.)
잘 있어, 아사히카와. 다음은 겨울의 모습을 보러 올게!
라일락이 오호츠크보다 소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아사히카와에서 오호츠크를 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석 칸은 승객들로 가득했다.
1시간 30분을 달려 삿포로에 도착했다.
삿포로 역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2030년에 신칸센 연장이 되면 막장환승은 확정이요, 더 복잡해질 예정이다. 30년 이후에는 아사히카와까지 신칸센을 이을 계획이라고 한다.
스텔라 플레이스 6층에 있는 식당가에 왔다. 부타동을 먹기 위해 잇핀을 찾았다.
여행 첫날, 공항 국내선에 있는 부타동 메이진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노보리베츠까지 바로 이동하느라 부타동을 먹지 못했다. 대신 삿포로 시내에 부타동 집을 2곳 찾아놨는데 시간도 여유가 있고, 접근성도 좋아 잇핀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11시 30분에 도착하니 내 앞에는 3팀 웨이팅이 있었다. 명부에 이름을 쓰고 15분 정도 기다려 들어갈 수 있었다.
부타동 하나만 시키기는 아쉬워서 돈지루를 함께 시켰다. 가격도 각각 990엔과 280엔으로 괜찮다. 함께 나온 츠케모노도 별미다.
부타동은 우리나라의 갈비를 연상시키는 맛. 비계 없이 살코기만 있는 점이 다르다. 먹을 땐 짠지 몰랐는데 다 먹고 나니 물을 부르더라. 그래도 삿포로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입맛에 맞았다. 여행 7일 차, 한식이 먹고 싶었는데 그나마 한식 느낌이 나는 음식이라 더 반가웠다. 돈지루에 건더기가 아낌없이 들어있어서 두 그릇을 비우니 배가 엄청 불렀다. 돈지루도 부타동에 지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재방문 의사 있음! 누군가를 데리고 올 만한 가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웨이팅 줄이 엄청났다.
역에서 15분을 걸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3박을 묵을 텐투텐 삿포로 스테이션. 3박에 71000원으로 예약했다. 여름 삿포로는 성수기라 숙소 잡기가 쉽지 않다. 호텔은 당연하거니와 게하도 예외가 아니다. 난 3달 전에 예약을 한 덕분에 3 연박을 할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잠시 소파에 앉아 오후 일정을 짰다. 오늘 일정은 오타루 당일치기. 골든 카무이 성지순례와 르타오, 오르골당, 유리공방에 들리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갑자기 성지순례에 변수가 생겼다.
원래는 시내 근처만 돌아다니려 했는데 454번 국도에 있는 다른 장소를 발견하면서 여기를 일정에 넣어야 될지 고민이 됐다. 도보로 가기 어려운 곳이라 버스로 갈 수 있는지, 있다면 충분히 구경하고 돌아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지, 돌아와서 르타오와 오르골당까지 갈 시간이 되는지 알아봐야 했다.
태블릿으로 열심히 지도를 보면서 비교해 보니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오타루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가서 바로 버스에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코스였다. 그리고 지금 당장 삿포로 역에 가서 오타루행 특급 에어포트를 타야만 했다. 서둘러 가방을 싸고 삿포로 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레일패스로 특급 에어포트 지정석 티켓을 발권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지정석. 삿포로에서 3박이라 다음 날 통째로 오타루를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여행 경비를 아끼고자 패스 마지막 날에 오타루를 넣었다. 오타루를 많이 둘러보지 못했지만 당일 치기로 간 건 잘한 선택이었다. 오타루는 여름보단 겨울이 아름답다는 걸 오타루 역에서 나오자마자 깨달았다.
오타루 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느긋히 구경할 시간은 없다. 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야 한다!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있는 삼각시장을 통과했다. 아주 작은 시장이다.
추오도리 정류장에 도착하니 바로 버스 1대가 왔다. 아쿠아리움행 버스였는데 타야 하나 고민이 됐다. 성지순례 장소인 니신고텐이 아쿠아리움 방향에 있었지만 구글 맵은 슈쿠쓰선 버스로 나와있었고... 괜히 탔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될까 봐 버스를 보냈다.
15시 13분에 버스가 와서 탔는데 이게 웬걸. 두 정거장만에 종점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일단 내려서 구글 맵을 보니 내가 탈 버스가 지연돼서 바로 앞에 온 다른 버스를 탔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래 타야 하는 버스가 내가 내린 정류장에 선다는 점이었다. 2분 후 제대로 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20분을 달려 슈쿠쓰에서 내렸다. 우와, 바다 냄새가 정말 엄청나다! 강한 수준을 넘어 코가 소금으로 절여질 것 같았다.
도보로 6분이라고 나오는데 10분 정도 걸렸다. 중간부터는 오르막이라 조금 숨이 찼다.
니신고텐은 골든 카무이의 죄수 중 한 명인 헨미 카즈오(어부) 에피소드(만화 37~41화)에서 나오는 곳이다. 청어 어업으로 부를 쌓은 경영자들이 지은 목조건물로 어부들이 숙박하는 시설이었다. 지금은 이 건물 하나뿐이지만 과거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다.
「메이지 말기 청어 어장의 매출량은 고작 봄철 3달만으로도 현재 가치로 25억 엔 이상이었다고 한다.
어부들의 우두머리는 최고의 사치를 부리는 부자라는 의미로서 '청어 갑부'라 불렸다.」
- 골든 카무이 40화 중에서
구글맵에는 오후 4시까지 영업이라 서둘러 왔는데 오후 5시까지 영업이었다. 하절기와 동절기의 영업시간이 다르니 여름에 방문한다면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여유 있게 구경해도 1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10월 16일부터는 4시까지 영업이니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오전에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외진 마을이라 해 지기 전에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게 좋다.
오타루 니신고텐은 메이지 30년(1897년)에 니 시세이탄 고우군 묵촌에 지어졌다. 쇼와 33년(1958년)에 창립 70주년을 맞이해 홋카이도 탄광 기선 주식회사가 지금 장소에 이축 복원하였고, 오타루시에 기증하였다. 1960년에는 홋카이도의 민가 중 처음으로 '홋카이도 유형 문화재 어장 건축'으로써 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는 오타루 수족관 공사가 관리를 맡고 있다.
어업과 가공 산업에 사용된 물품, 생활 용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여인 인형의 의복이었다. 일본 전통 의복, 아이누 전통 의복과는 전혀 다른 의복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2층 전망이 멋지다. 니신고텐에 왔다면 꼭 2층을 들려보시길.
화장실 가는 복도에 있는 수도. 이런 시설까지 보존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경을 마치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작은 부두가 있었다. 그냥 지나쳤다면 후회할 뻔했다. 도보 1.1km 거리에 슈쿠츠 파노라마 전망대가 있는데 구글 리뷰 1000개가 넘는 아주 유명한 전망대이니 니신고텐에 올 일이 있다면 가보자. 나는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가지 않았다. 다음 버스가 있었지만 오후 6시에 영업이 끝나는 르타오와 오르골당에 가기 위해선 16시 51분 버스를 타야만 했다.
대신 골든 카무이에 등장한 오타루 영빈관에 가기로 했다. 니신고텐에서 친절한 직원분이 영빈관 할인권을 주셨는데 외부만 볼 거라 할인권은 기념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올라오는 길에 봤던 민박 아오츠카 식당. 밖에서 청어를 굽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잠시 구경했다. 알고 보니 오타루에서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집이었다. 구글 리뷰가 무려 1901개. 관광객이 여기까지 올 일은 거의 없으니 현지인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는 뜻이다. 가격도 저렴하다고 한다. 다음에 슈쿠쓰에 오면 방문해 봐야겠다.
오타루 아쿠아리움. 아쿠아리움행 버스를 타면 바로 앞에 내릴 수 있다. 평일이고,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주차장에 차가 많지 않았다.
아쿠아리움 반대편에 있던 선착장. 이곳은 오타루 푸른 동굴 투어의 배가 출발하는 곳이다. 성인 5500엔으로 매우 비싸지만... 오타루에 있는 모든 걸 다 해봤다, 모든 걸 다 봤다는 분이라면 해볼 만할지도. 단, 날씨가 좋은 날에 가야 돈값을 할 것 같다.
오타루 영빈관(옛 아오야마 별저)에 도착했다. 입장료가 1100엔으로 매우 비싸며 현금만 가능하다. 견학 소요시간은 20~30분이면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4월~10월은 9시에서 17시, 11월~3월은 10시에 16시까지 영업한다. 입관은 영업 종료 30분 전까지만 가능하다.
멋진 정원과 어우러진 아오야마 별저는 굳이 내부 관람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곳이다. 입장료가 부담스럽고, 외부만 봐도 충분한 골카 팬이라면 나처럼 외부만 들러도 좋다.
구경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강렬한 바다의 짠맛이 코를 강타했다. 바다는 멋졌지만 내 코의 안위(?)를 위해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버스를 타고 오타루 시내로 돌아간다. 과연 5시 반까지 오르골당에 도착할 수 있을까? 르타오의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까? 한 시간 뒤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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