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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해외/5박 6일 구마모토 뚜벅이 여행(2024)

구마모토, 여행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다.

by 조각찾기 2024.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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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토요시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구마모토역까지 1시간 40분. 가이드와 통역, 회계와 버스 예약확인까지 신경 쓸 것이 많다 보니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고속도로에 계곡 풍경이 이어졌는데 비몽사몽 한 탓에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버스를 탄지 4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구마강이 이어진다. 구마강은 전체 길이 115km를 자랑하는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로 래프팅이 유명하다. 구마 강은 크게 2가지 코스가 있는데 바위를 피하며 스릴 있게 내려가는 급류 코스인 '급류 롱 코스'와 '격류 코스', 그리고 히토요시의 풍경을 즐기는 '청류 코스'가 있다. 4~10월에 래프팅이 가능하며 구마 강을 따라 래프팅 업체가 곳곳에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예약하면 된다.

 

잠시 휴게소에서 10분 쉬었다 간다. 너무 피곤했지만 3일 전 사용했던 현금 인출기가 있던 것이 생각나 지친 몸을 일으켰다.

 

3일 전과 다르게 상점가가 열려 있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간식을 사 먹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일본의 고속버스는 시내버스처럼 여러 정류소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구마모토 시내에 들어가니 정거장이 부쩍 늘었다. 열 곳 이상에서 멈춰 섰는데 도중에 구마모토 시청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1년 2개월 만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구마모토 역 앞에 내렸는데 바람이 엄청나다. 거의 태풍 수준의 바람이... 비까지 살짝 내리고 있어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체크인을 했는데 일반 트윈룸을 예약했건만 리모델링한 트윈룸으로 배정을 해주셨다. 4성급 호텔다운 서비스와 룸컨디션이었다.

 

창밖 뷰는 구마모토역뷰. 뷰 하나는 지금까지 보았던 도시뷰 중 최고다.

 

 매서운 날씨, 지치고 피곤한 몸. 여러 요인으로 저녁은 역 안의 마트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사 온 저녁거리. 마감 할인 시간 전이라 할인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다. 일행은 이 정도면 충분히 싸지 않냐고 말하는데 일본여행에 익숙하고 일본의 마트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운 가격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마감 할인에 너무 익숙해져있다 보니 할인하지 않는 식품은 잘 사지 않고, 구매력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문화 속에 살면 누구든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익숙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생물이 아닌가.

 

저녁을 먹고 나니 조금 몸 상태가 나아진 듯싶어 일행에게 구마모토성을 보러 가길 제안했다. 시청 무료전망대 마감 시간 직전에 아슬아슬 도착할 수 있었다. 구마모토시에 온 것은 벌써 2번째. 하지만 구마모토성 관람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한국인은 구마모토성에 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아픈 역사와는 별개로 상대가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구마모토성 복구가 90% 이상 완료되면 꼭 방문해보려 한다.

 

구마모토 긴자거리. 솔직히 볼 건 없다. 그냥 유흥가, 상점가다. 이때는 몰랐다. 이 거리에 들어온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케이드 상가의 모습.

 

나츠메 우인장 3기 3화에서 시바타와 함께 나츠메가 시게루상의 생일 쇼트 케이크를 산 곳이 바로 이곳이다.

 

 번화가라 술 취한 사람이 거리에 많다 보니 어딜 들어가긴 좀 그렇고... 아케이드 거리만 왕복 3~4번을 오고 가다 결국 돈키호테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일행과는 따로 떨어져 구경하고 있어 일행을 찾고, 일행이 선물을 고르고 계산하는 걸 기다리니 매장이 들어온 지 30~40분이 지났다. 이때 내 몸상태는 사실 서있는 게 신기한 상태였다. 돈키호테에 들어오기 전에 아케이드 상가를 이미 너무 많이 걸은 탓이었다. 노면전차와 버스 막차를 타러 뛰러 갈 수도 없는 상태. 결국 우리는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원래 계획은 성 구경만 하고 걸어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케이드 상가 구경을 하느라 걸어올 수 없는 몸 상태가 되었고, 여행한 지 5일 차인 나와 2일 차인 일행. 남은 체력의 양은 모와 도 수준이었다. 피곤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일행은 이를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동행이 있는 여행. 아픈 사람, 배고픈 사람, 배 아픈 사람을 먼저 챙기고 그다음은 둘의 추억이라고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시작한 여행이었으나 결국 우리의 여행은 1순위도 지켜지지 못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아프지 않았으면 3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절뚝거리며 1시간에 걸어갔다. 택시를 타는 방법도 있었지만 오늘 이미 한 번 택시를 탄 데다, 야간 할증이 붙는 시간이었고, 일행이 떠나고 난 뒤 여행까지 예산이 빡빡했던 나로선 택시를 타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일행은 택시를 타자고 가볍게 말했지만 이 상황을 초래한 건 일행이었기에 택시를 타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나 화가 났고... 함께 있지만 두 사람을 위한 여행이 아닌 한 사람을 위한 여행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내겐 미안하지만 자기는 걸어가게 돼서 좋다는 일행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입을 떼려다가 어떤 말을 해도 좋은 상황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침묵을 선택하고 말았다.

 

 지금도 이날 밤의 사진을 보면 씁쓸한 감정이 밀려온다. 우리의 여행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여행을 처음 제안했던 작년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달라도 반드시 함께 계획을 짜야한다. 여행 계획에 모두가 참여해야 실제 여행을 갔을 때 자기가 계획한 부분에 대해 책임감이 생기고, 적극적으로 상대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여행의 끝은 배드 엔딩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가족이라면 화 내고, 반성하고 바로 풀겠지만 자주 만날 수 없는 지인이나 친구라면 인간관계가 끊길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여행이 망가진 책임은 나에게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라 괜찮을 줄 알았지만 결국 나도 기계가 아닌 사람.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호텔에 도착하니 밤 11시 50분. 새벽에 긴 대화를 나누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나고 말았다. 지금도 종종 그때 생각이 난다. 몇 달이 지났건만 이 글을 쓰는 게 힘들었던 걸 보면. 이어질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지고, 끊어질 관계는 끊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문제는 한 사람의 마음만으론 변화할 수 없다. 만약 가장 가까운 친구, 지인, 동료와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면 한 가지 조언하고 싶다. 오랫동안 이어가고픈 인연이라면 여행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보라고. 함께 간다면 반드시 함께 계획을 짜고 역할을 1/n으로 나누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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